<15> 십사일 째,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과 관계 맺기(전주 한옥마을~금구면)

▲ 전주 한옥마을 골목에 있는 벽화마을.

숙소서 만난 언니와 한옥마을 구경

여행 중 짧은 만남에도 서로 의지

우리 속 동물, 영화 속 인물과 중첩

 

●전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칼국수

전주시에서 남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곳은 해남이 아니라 보성, 고흥이다.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작은 지역 단위의 지도만 보다 보니 해남이 서쪽 끝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렸다. 더구나 전주시 한옥마을을 꼭 들려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서쪽으로 가야할 노선을 따르지 않고 내륙으로 깊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서둘러 서쪽으로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정이 늦어질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한옥마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간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기에 오늘은 김제시 금구면까지, 평소보다는 조금 덜 걷기로 했다.

어제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제주도 언니와 함께 한옥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새로운 곳에 와 만난 인연은 곧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의지하게 된다.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오랫동안 알던 친구처럼 정말 돈독해지는 것 같다. 짧게나마 서로가 살아왔던 순간들을 이야기 하면서 언젠가는 또 만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언니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전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찾자 했지만 어느새 이곳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거리 음식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멋있는 인테리어로 장식해 새롭게 문을 연 것 같은 음식점들이 많았다. 이는 곧 이곳의 식당들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행하는 식당들이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전주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식당을 찾아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그런 식당들도 많이 남아 있었다. 양은그릇에 철철 넘치도록 담긴 전주식 칼국수 집이었다. 허름하지만 사람들이 가득해 그 명성이 어느 정도 일지 짐작이 갔다. 맛도 있었다.

벽화마을도 갔다가 한옥마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풍년제과표 전주 초코파이도 먹어보았다.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한옥마을을 걷다보니 어느새 가야할 시간이 다 되었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어두워 질 때 도착하기 때문에 언니와도 작별해야 했다. 우리는 다음에 다시 꼭 만나자고 약속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혼자 여행하던 와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잠시나마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여행을 축복해주며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전주는 언젠가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언제든 하루 이틀 여행오기엔 정말 좋은 곳인 것 같다

전주시를 벗어나 금구면으로 가는 길에 개고기 시장을 지나쳤다. 보신탕을 위한 개, 닭, 오리나 염소들이 비좁은 철장 속에 갇혀 있었다. 끔직했다. 보신탕을 먹는 것이 끔직한 것이 아니라 팔려나갈 때까지 그렇게 비좁은 철장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불쌍했다. 사람이 지나갈 때 마다 사람들을 올려다보는 동물들은 차라리 빨리 자기를 사달라는 것인지 살려달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빠르게 지나치고 싶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동물을 무척 좋아하면서 저런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쳐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살아있는 동물이 고통 받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렇다고 채식 주의자도 아닌데 말이다. 발길을 재촉하며 생각을 털어내 버렸다.

●베로니카, 사랑에 빠지다

언니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는데 벌써 언니가 그립다.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떠들다 헤어져서 그런지 왠지 혼자 걷는 길이 자꾸만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했다는 것이 이렇게 내 마음을 크게 달라지게 할 줄 몰랐다. 하루만 지나면 다시 혼자에 익숙해지겠지 라며 중얼거려 보았다.

파울로 코헬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영화로 제작된 것을 본적이 있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시도를 한 베로니카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곳 사람들로인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다.

영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밀리 영 감독)가 자꾸 맴돈 이유는 상생이라든가 타인의 중요성을 하루 종일 느끼고 있던 터인데다, 금구면으로 가는 길에 동물들을 보면서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자꾸만 떠올랐다. 누군가에 의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과 자신만의 우리에 스스로 갇힌 베로니카가 겹쳐진다.

20대 중반의 여성 베로니카(미셀 겔러)는 아름다운 외모와 좋은 직업, 앞으로의 근사한 삶 등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녀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깨어난다. 베로니카는 자신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주치의는 심장병으로 인해 한 달 안에 죽을 것이라는 거짓 시한부 선고를 한다. 베로니카는 더 빨리 죽고 싶었지만 의사가 말한 한 달이 다가올수록 병원에서 함께한 남자 에드워드(조나단 터커)와 병동 사람들과 형성된 새로운 관계로 인해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베로니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병원에서 만난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짧은 시간이나마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보자며 병동을 탈출한다. 베로니카는 아마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행운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아마도 살기위해 노력을 하지 않을까? 

베로니카는 ‘남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미친 짓은 사랑이야’라는 말을 한다. 진실한 사랑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배우게 된 것이다.

전주를 떠나면서 어디에서든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고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새로운 공간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털어놓는 것이 쉬울 때가 있다. 그들은 나의 과거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바라봐 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나의 이야기도 하며 알아가는 인연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낯선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들이 사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또다시 만나 빈 시간들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또 어떤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지 설레는 길이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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