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마이산이 현대인에게 남겨준 선물 ‘자연생태 보고(寶庫)’

▲ 망이산성 안에는 옛 사람들의 역사를 반추할 수 있는 다양한 토기가 발견되고 있다. 토기를 통해 성의 축조연대와 성을 사용한 국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자동차·통신 발달로 고대사회 주요기능 쇠퇴

“마이산의 생태, 전형적인 중부지방 특징 반영”

마우정 주변, 상수리나무·딱총나무 등 분포

 

해발 472m의 마이산은 모양새로 보아서는 전형적인 중부 내륙지방의 평범한 산이다. 하지만 지형학적으로 중부내륙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으며 유사시에 한양 등 중심지역을 방어 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톡톡히 한 산이다. 특히 풍부한 수량은 남쪽으로 음성과 청주시를 관통하는 미호천의 발원지가 되고 남한강과 한강의 물길과 조우하는 천혜의 자원이다.

옛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이산의 특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망이산성(望夷山城)의 존재다. 산성은 중심부 정상 망이산봉수를 감싸고 있는 토성(土城)과 북쪽 외곽 능선과 계곡에 걸쳐 넓게 포곡식(包谷式:계곡을 감싸고 성을 축조해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의 석축성이 구축된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계곡을 이용한 석축기법을 활용한 것은 그만큼 마이산 계곡의 물이 풍부했고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전체 길이가 2천 80m에 달하는 석축 외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돼 고려 초 광종 때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모두 4개의 성문과 5개의 치성(雉城: 한국 성(城)의 구조물의 일부로, 성벽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 적이 접근하는 것을 일찍 관측하고 싸울 때 가까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한 시설로 이곳에 누각이 있으면 ‘포루’라고 한다)을 갖추고 있으며 성 안쪽을 따라 통행로를 길게 설치했다.

성벽은 주로 경사면을 이용한 내탁(內托: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올리는 공법) 방식으로 축조했으나 성문 주변에는 돌을 안팎으로 쌓는 협축(夾築; 석성을 쌓을 때 성의 내부와 외부를 모두 돌로 쌓는 공법)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성곽은 지형조건에 따라 굴곡을 이루고 있는데 바깥으로 돌출된 성벽의 회절부에 치성(雉城)을 설치하고 성문은 안쪽으로 굽은 곳에 배치했다. 내부 평탄지에서는 수혈유구와 함께 제사나 특별한 의식장소로 여겨지는 팔각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특히 고구려의 석축산성에서 주로 보이는 굽도리양 양식(치성의 하부에서 경사를 두고 좁혀 가다가 수직으로 올리는 고구려 양식의 축성 방법)의 치성이 확인됨에 따라 망이산성이 고구려 남하시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산성 안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망이산성 안에서는 내성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에서는 조족문토기, 굽다리 접시, 격자문이 타날된 항아리 등 백제 한성시의 대표적인 기종들이 출토되었다. 이는 서기 4~5세기경 백제에 의해 판축식 토성이 먼저 축조되었음을 입증해주는 자료로서 백제가 망이산성을 차령산맥 이남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 혹은 주요교통로상의 방어적 요새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주름무늬병, 파상문이 새겨진 목항아리, 대호 등은 후대에 덧대어진 외성석축의 축성 연대를 가늠케 하는 자료다. 또 개축된 서문의 함몰부와 와적 층에서는 여러 종류의 명문기와와 함께 ‘준풍사년(峻豊四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키와가 출토되었다. 이 암키와의 바깥 면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준풍’은 고려 광종 11~14년(960~963)에 걸쳐 독자적으로 사용한 연호로서 서문을 포함한 석축성의 개축연대를 알수있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마이산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 중심의 역사에서 비껴간 적이 없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자동차나 통신의 발달로 인해 고대사회에서 중요하게 쓰인 기능들이 퇴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망이산성의 쓰임이 없어지면서 산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봉수대의 역할이 없어지면서 자취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마이산은 바로 ‘자연생태의 보고’라는 점이다.

취재답사에 동행하고 있는 숲 해설가이자 미호천지킴이 전숙자씨는 “마이산의 생태는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아직까지 마이산만이 갖고 있는 특이식물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산에서 자생하는 모든 식물들이 골고루 산재하고 있다는 것은 산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산의 저층부에서 자라는 식물부터 중간부분, 상층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특징들을 골고루 갖고 있다. 수량이 풍부한 산답게 토질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미호천지킴이 임한빈씨는 “멧돼지가 목욕한 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멧돼지와 고라니, 노루 등 중부지방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물 군들이 살고 있다. 음성지역의 좋은 산들이 골프장 건설로 지나치게 개발된 사례를 생각해볼 때 미호천의 발원지이며 생태적으로 원시적 속성을 간직하고 있는 마이산만큼은 제대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세가 부드럽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인지, 곳곳에 옛 사람들이 터를 닦고 밭을 일구며 살았던 화전민들의 흔적도 보인다”고 밝혔다.

화전민의 흔적이 있다는 것은 산성이 군사적 요충지로서 뿐 아니라 민초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일이다. 훼손되지 않은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산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생태보고’가 결국 현대인들에게 남긴 마지막 귀한 선물이라는 점이다.

발원지 샘인 마우정 주변에는 유난히 크게 자란 상수리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 또는 도토리나무라고 일컫는 참나무속(Quercus spp.)의 주요 7종 가운데 하나다. 도토리 밭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숲정이문화를 대표하는 종이다. 숲정이에서 먹을거리로 도토리나 버섯을 얻고, 에너지원으로 땔감도 얻고, 여러 가지 생활 목재나 건축재도 얻는다.

자리공이라는 식물도 보인다. 자리공은 여러해살이풀로 독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과용하지 말아야 한다. 뿌리가 덩어리지고 살쪄 있다. 줄기는 곧게 서서 1.5m 안팎의 높이로 자라며 많은 가지를 쳐서 더부룩한 외모를 보인다. 잎은 계란 꼴 또는 타원 꼴로 매우 크며 양쪽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질이 연하며 마디마다 서로 어긋나게 한 잎씩 자리한다. 희게 피는 꽃은 잎겨드랑이의 반대쪽으로부터 자라나는 꽃대에 많이 뭉쳐 피며 이삭 모양을 이룬다. 꽃잎은 없고 5개의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며 꽃가루주머니는 연분홍색이다. 꽃이 핀 뒤에 물기 많은 검붉은 열매를 많이 맺는데 아래로 처진다.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뇨 효과가 크며 종기를 가시게 하는 효능도 있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세, 살갗에 돋는 물집(수종), 복부에 액체나 가스가 차서 배가 부르는 증세, 각기, 인후염, 악성종기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쓴다.

푸른색 일색의 산속에 너무나 붉고 아름다워 요염해 보이는 열매가 있다. 딱총나무 열매다. 넓은 잎의 작은키 나무로 줄기가 무더기로 올라온다. 키가 3m 정도로 비스듬히 굽어져 자라고 가지가 덩굴 같이 퍼져 전체가 넓게 둥그스름해진다. 산골짜기 양지나 음지의 너덜바위 지역, 개울가에 서식하는데 마이산 곳곳에서 군락을 이룬 모습이 아름답다. 딱총나무  열매 역시 한약재로 쓰이는데 골절, 류머티즘, 신경통, 통풍, 부기, 신장염, 황달, 천식, 근육통, 기미, 주근깨 등에 효과가 있지만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어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 있어 장기 복용은 좋지 않다. 임산부는 특히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제공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중원의 산성’)

김정애기자(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 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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