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불타께서는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우리 속담에는 ‘천석지기는 천가지 걱정, 만석지기는 만가지 걱정’이란 말이 있다. 요즘 들어 어쩌면 그리도 그 말이 쏙쏙 귀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괴로움과 고통은 끝이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편안하다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설령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마주앉았다 해도 겉모습일 뿐 조금만 지나면 죽는 소리다.

지난 주말 전라도에서 선배가 올라왔다. 그 선배는 이름을 대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그런 내로라하는 곳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마치고 전라도에 있는 모 대학의 초빙교수로 갔다. 모두들 부러워하고 축하를 했다. 젊은이도 취업이 어려운 때에 그것도 갑년이 돼가는 나이에 대학교수가 됐으니 어찌 축하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마주앉은 선배 얼굴이 이상하다. 불에 덴 상흔처럼 목덜미에서부터 반쪽 얼굴이 온통 불그죽죽하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대상포진이 얼굴에 와 근 한 달을 병원에서 고생했단다. 뭐가 그리 힘들어 대상포진까지 걸렸냐고 물었더니 새로 간 대학에서 맡은 업무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란다.

대학마다 난리다. 하기야 하루 이틀 전 이야기가 아니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대학일수록 심각하다. 교수들이 연구할 시간적·심적 여유가 없다. 학생들을 모집해야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학생이 없으면 빈껍데기 아닌가. 그러니 교수들은 일 년 내내 학생모집을 신경 써야한다. 선배는 대학에서 학생모집을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청주에 올라온 것도 후배가 있는 모 고등학교에 특강 형식을 빌려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나날이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대학 수는 많고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이야기하다 그 자리에 후배를 불렀다. 얼마 전 부도가 나서 큰 어려움에 빠진 후배였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해서였다. 우리는 곧 자신들의 걱정거리를 잊고 또 다른 걱정에 빠졌다. 후배가 오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어떤 말을 한들 후배의 고통을 해결해줄 순 없다. 후배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일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 뿐이다. 우리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더 고민스러웠다.

후배가 들어왔다. 누가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제일 힘들어해야 할 사람은 후배였다. 그런데 녀석의 얼굴이 환하다. 녀석을 보기 전까지 우리가 상상했던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이율배반적인 느낌에 적이 당황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을 하자 도리어 괜찮다며 우리를 위로한다.

그러더니 저축은 하지 못했어도 빚이 없었던 그때가 좋았단다. 복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때 멈추지 못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단다. 요즘은 마음이 편하니 살 것 같단다. 큰 빚을 졌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리 있겠는가. 더구나 후배는 남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도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그런 몰염치한 사람이 아니니 속마음은 몹시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선배들이 걱정할까 애써 속마음을 감추는 그 마음이 고맙다.

걱정거리가 없다면 지루해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괴로움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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