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간밤에 몇 번이나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는지 잠을 잔 것 같지도 않다. 일어나니 머릿속에 돌덩어리라도 들어앉은 것처럼 묵직하다. 무더위와 열대야 탓이다. 자전거를 타고 무심천에 나가볼까하다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차일피일 게으름을 피우다 밀린 원고가 부담스러워서였다.

요즈음은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하는 일이 종일 하는 일의 절반도 넘는다. 낮에는 여러 일로 정신이 산만해져서 새벽처럼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새벽에는 움직이지 않고 원고에만 매달렸다.

무심천에 나가려는 생각을 접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잠을 설친 탓에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또다시 갈등이 일어났다. 원고와 자전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양말을 신었다 벗었다를 되풀이했다. 이런 간단한 일도 단숨에 결정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자신이 스스로 한심했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결국 자전거를 타고 무심천으로 향했다. ‘맑은 정신에도 제대로 안 되는 글이 이렇게 어지러운 머리로 되겠니?’하는 생각이 원고 대신 자전거를 선택하게 했다. 큰길에는 새벽녘이라 인적도 자동차도 뜸했다. 인력 소개소 앞 도로가에만 일용직들이 줄줄이 앉아있다. 자전거를 타고 그들 앞을 지나가는 것이 미안하다. 나도 저들만큼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혹여 저들이 ‘팔자 좋게 자전거나 타러 다닌다’며 욕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인력소개소 앞을 지날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무심천 둑이 저만치 앞에 보이기 시작하자 그런 상념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무심천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 둑에서 하상도로만 내려서도 한결 시원하다. 공기도 맑다. 바람결에 흔들리며 서걱거리는 억새 소리도 좋다. 자전거를 타고 무심천 상류인 장암교 쪽으로 달렸다. 머릿속을 짓누르던 묵직한 기운이 스치는 바람을 따라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꽃다리를 지나고, 수영교를 지나고, 원평교를 지나고, 원마루에서 내려오는 도랑과 무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였다. 예전 논밭은 모두 사라지고 이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시멘트로 덮여져 끝자락만 조금 남아있는 도랑이었다.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데 언뜻 무언가가 생소한 것이 보였다.

급하게 자전거에서 내렸다. 물오리였다. 어미오리와 새끼오리 여덟마리였다. 어미와 새끼가 원평교 밑에서 놀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장날 재래시장에 가면 구경할 수 있었던 병아리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병아리를 볼 수 없었다. 그런 병아리를 야생에서 그것도 도심 속 아파트 단지 시멘트 구조물 사이에서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고 길에 서서 새끼오리들이 노는 모습에 빠졌다. 새끼오리들은 어미를 따라 작은 시냇물을 건너기도 하고, 모이를 찾는 것처럼 부리로 모래밭을 파기도 했다. 고놈들이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아까웠다.

나는 연신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왠지 오늘은 새끼오리들이 행운을 가져다 줄 것만 같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도 살아있는 자연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무심천에게도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원고 쓰기를 포기하고 무심천에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했다. 시민 여러분! 무심천 원평교 밑에 앙증맞은 새끼오리 구경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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