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마우정(馬雨亭)’이 갖고 있는 존귀한 가치

▲ 바위틈을 시멘트로 발라 놓았고 그 틈에 파이프를 박아 놓아 파이프를 통해 물이 흐르도록 했다.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씨가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미호천의 발원지인 마우정의 물을 조롱박에 받고 있다.

마이산 9부 능선에 위치한 약수터…알길 없는 이름의 유래

마우정 물, 미호천은 물론 경기도 일죽면 화봉리로도 흘러

 

미호천을 만들고 멀리 금강을 만들고 더 멀리 황해를 이루는 어머니의 몸속과 같은, 깊고 심오한 물길의 원천을 만났다. 그 대단한 물길의 원천을 만났음에도 먼 길 올라오느라 땀을 뺀 나머지 조롱박에 물을 떠 마시는 일이 더 급했다. 가뭄에 목마른 식물처럼 목이 말랐던 터에 물을 맘껏 마신 다음에야 뒤를 돌아보았고 산 정상에 거의 다다랐다는 실감이 났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후덥지근한 기온은 산 정상 저 멀리 들판의 풍경이 마치 안개에 뒤 덮인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멀리 길게 뻗은 도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진천이 그 어디쯤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저 앞에 보이는 저 큰 도로는 뭘까요?”

“지도를 확인해야겠지만 아마도 중부고속도로 같아요. 산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사방이 트여 멀리까지 다 보이는 산은 드물어요.”

길안내를 맡은 미호천지킴이 임한빈씨의 대답이다. 산에 왔으면 산을 봐야 하는데 우리 일행은 산보다 산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사람 사는 세상에 더 관심을 가졌다. 갈증을 해갈하고 한참을 그렇게 멀리 보이는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진 다음에야 비로소 마우정(馬雨亭) 을 보았고 마우정 주변의 나무와 풀들을 보게 되었다.

음성군 대야리 왕재소 어른(90)의 증언에 의하면 큰 바위 사이로 물이 나오는 틈이 있고 그 틈이 샘이고 그 틈으로 명주실을 집어넣으면 끝을 가늠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간다고 했다. 어른의 증언대로 대로 마우정(馬雨亭)은 마이산 정상을 472m( 471.9)로 본다면 정확하게 9부 능선인 425m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마우정은 아니었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숲으로 우거진 골짜기에 집채만 한 바위가 두 개 있고 그 바위틈은 여인의 자궁처럼 생겼을 것이고 그 샘은 어둡고 깊어 보이지 않지만 실타래 실을 풀어 넣을 경우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 갈 것이라고,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마우정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시멘트로 막아져 있고 그 틈에는 수도 쇠파이프를 박아 놓아 그 파이프를 통해 물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샘 위로는 샘을 덮는 지붕이 설치돼 있고 ‘매산약수터’ ‘마우정’이라는 표지판을 달아 놓았고 샘물은 음성군 수도사업소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상상했던 모습의 샘은 아니지만 지독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파이프를 통해 돌확으로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대는 샘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우정 주변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묻어나 있었다. 사람들이 쉬었다 갈수 있는 벤치와 오르고 내리는데 편리하도록 하는 나무 계단도 설치해 놓았다. 곁에 우직하게 서 있는 상수리나무도 보였다.

이 마우정은 왜 馬雨亭일까? 여러 자료를 뒤져 보았지만 망이산성과 마이산에 대한 자료는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마우정을 설명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왕재소 어른도 그곳을 그냥 샘이라고만 불렀다고 했다. 다른 양덕리 마을 어른들도 그 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음성군지와 인터넷 자료를 찾아봐도 마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마지막으로 음성군 문화원을 통해 확인해볼 예정이지만 그 전에 우선 한자의 뜻을 통해 추론해 볼 수는 있다. 말마에 비우, 정자정의 마우정은 말이 비를 피해 쉬는 곳, 말이 물을 마시며 쉬는 곳, 아니면 현대인들이 등산길에서 만난 샘을 마우정이라 명명했는지 등등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발 472m의 산에 말이 올라와 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상상력을 깰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마우정 보다 아래에 있는 망이산성의 석축이고 산성 안에 대략 천 사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집수터다. 집수터는 마우정에서 약 50m아래 직선으로 이어져 만나는 곳에 있다. 마우정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모았다 성 아래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망이산성 안에는 이 같은 집수터가 여러 곳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망이산성이 통일신라시대 때 외성이 축조되고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마우정 아래 집수터 역시 천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온 것이다. 집수터의 역할은 현대의 저수지와 같다. 성 안의 사람들이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남는 물은 성 밖으로 내보낸 것인데 성을 축조하고 사람이 들어와 성 안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홍수나 가뭄조절을 할 수 있는 저수지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마우정 아래 산속의 집수터는 넘치는 물을 잠시 저장하므로써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면서 물의 수요와 공급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을 했다.

그 같은 집수터가 한곳이 아니라면 마우정의 물길은 마이산 능선을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흐른다는 것이다. 마이산이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와 경기도 일죽면 화봉리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우정의 물은 미호천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죽면 화봉리로도 흐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대체 그 물길이 어느 정도 깊고 찰지면 반만년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쉼 없이 흐를 수 있는 것인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식수원이 될 수 있는지, 마우정의 가치가 한없이 커 보이고 그 존재가 너무나 귀하다.

글 김정애기자(취재지원 전숙자·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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