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따라 금강에서 황해로

첫날 마이산을 오르다 초입에서 만난 작은 샘이 미호천의 발원지라고 단정했다. 마이산에서 만난 샘이며 극심한 가뭄에도 산중턱 작은 물길에서 생명수 같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호천 발원지를 답사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미호천의 발원지로 알고 샘 옆 층층나무에 ‘미호천 발원지’라는 표식을 달아 놓기도 하고 미호천을 있게 한 샘의 원천에 감사하다는 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첫날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뭔가 개운치 않았다. 음성읍 감우리 보현산 발원지 설은 이미 미호천의 한 줄기로서 역시 발원지 일수 있겠으나 그래도 미호천 본류는 마이산이라고 정리를 한 상태지만 처음 만난 마이산 초입의 샘이 미호천의 발원지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초입의 샘은 높은 산을 정식으로 올랐다기 보다는 낮은 구릉을 지나 산 정상을 향해 가는 그야말로 초입에 해당한다. 마이산 정상이 471.9m라는데 그 높이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산 정상이 한참 멀 뿐 아니라 정상에 망이산성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다른 샘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당연하게 이어진다.

특히 양덕리 마을에서 불과 100m도 안 되는 샘을 왜 대야리 발원지라고 혼용해 불렀는지도 의아했다. 삼성면 양덕리 주민들은 당연히 발원지가 양덕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 자료에 대야리라고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답사를 늦추더라도 다시 한 번 마이산을 가보기로 했다. 두 번째 답사길에서는 마이산을 등 뒤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양덕리 옆 마을 대야리로 향했다. 대야리도 멀리서 보면 마이산이라는 거대한 산줄기 아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한낮에 농촌마을은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다. 밭이나 들로나 가야 겨우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대야리에 들어서자 마치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너무나 정갈하고 고적했다. 마을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 마을 한 가운데 있는 한 건물에 붙여진 ‘자연생태 우수마을’이라는 표지판이다. 자연생태 우수마을은 자연환경 및 경관 등이 잘 보전되어 있거나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 환경친화적으로 조성된 마을을 환경부가 선정해 지정해주는 제도인데 대야리가 그 마을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우수한 자연경관을 보전하는 마을에 특혜를 주는 농식품부 지정 ‘녹색농촌 체험마을’이라는 표지판도 보였다. 그래서 일까? 다른 마을보다 깨끗하고 옛 마을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아 전형적인 농촌마을처럼 자연스러웠다. 이런 대야리가 궁금했다. 누구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을 찾아서 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그러다 만난 분이 대야리에서 70년간 살고 있다는 왕재소(90) 어른이다.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표지판이 대문에 붙어 있는 왕 노인의 집은 오래전 건축한 한옥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었다. 지붕 서카래가 그대로 있었고 집안 곳곳에는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농기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르신은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었고 그때 세운 공로로 나라에서 주는 큰 상도 받았다고 한다. 어르신에게 대야리에서 살아온 이야기와 미호천의 발원지, 왜 발원지에 대한 행정구역이 혼용되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가 경기도 이천에서 와 스무 살부터 여기서 살게 됐지. 그때는 마을 뒤 저 마이산을 내 집 드나들 듯 했어. 나무를 해야 했잖어. 망이산성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그 넓은 사방이 다 보였어. 신기했지. 멀리 경기도 죽산이 보였고 음성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진천까지 보였어.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었지. 진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는 거여. 망이산성 위에 큰 바위가 있었고 그 틈새가 샘인디 거기서 물이 나왔지. 옛날 어른들이 그 샘에 명주실을 집어넣으면 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간다고 했어. 그만큼 깊은 샘이라는 거여. 산에 올라가면 다들 그 물을 받아먹었지. 산성 옆으로 산골짜기가 있는디 그걸 경계로 저짝은 양덕리고 이짝은 대야리여. 샘이 있는 데는 양덕리가 맞지. 그 샘은 말여.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고 산능선 9부쯤에 있지. 그 샘을 마우정이라 불었어. 옛날 망이산성을 맨든 사람들이 산성 안에서 그물을 먹지 않았겄어? 성안에 물을 모아 사용하던 터가 남어있잖어.”

샘까지 가는 길은 대야리에서 보다 양덕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것이 왕 노인의 설명이다. 양덕리에서 올라가면 직선거리지만 대야리 마을에서 올라가면 등산로로 사용하는 산 둘레 길을 한참 돌아가야 한단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대야리 사람들은 마이산을 에둘러 양덕리를 가거나 망이산성까지 오르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미호천의 발원지는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미이산 정상아래 ‘9부 능선 마우정(馬雨亭)’으로 정리해본다.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가도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샘은 우리가 처음 가서 가재를 만났던 그 샘보다 훨씬 높고 깊은 9부 능선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왕 노인의 설명대로 대야리에서 나와 다시 양덕리로 향했다. 맨 처음 갔던 그 마이산 초입의 샘 역시 미호천의 발원지와 연결된 샘이지만 실제 미호천의 원천이 되는 샘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이, 깊이 올라가야 하는 망이산성 안쪽 9부 능선에 있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대야리에서 나와 초입에서 만났던 샘을 지나 산성이 있는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숲 해설가 전숙자씨는 마이산 주변의 생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이것은 큰 까치 수염이라고 하지. 배가 아프고 갈증이 심하게 날 때 이것을 질겅질겅 씹으면 입에 침이 고여. 배 아픈 것도 가라 않지. 저것은 모시물통이고 저것은 으아리라 부르지. 저것은 각시붓꽃이고 이것은 땅빛살이라고 해. 저것은 개면마이고 이것은 산초나무인데 추어탕집에서 향신료로 사용하는 것이지. 산초 잎에 구멍을 내 몸에 부치면 모기나 벌레가 달려들지 않아. 산에서는 산초를 발견하면 잎을 따 흠집을 내 얼른 몸에 부쳐야해. 저것은 노루발 풀인데 냉이 많은 여성들이 삶은 물을 마시면 특효약이지.”

정상을 향해 오르는 동안 식물의 종도 다양했다. 산 낮은 곳에서 자생하는 식물에서부터 중턱에서 자라는 식물,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까지. 마이산의 높이가 채 500m가 되지 않지만 그 안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 군이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좁고 가파른 등산길을 오르며 온갖 진귀한 식물들을 구경하고 무수히 그 이름을 들었지만 듣는 순간 잊어버리는 게 더 많았다. 그렇게 오르다 산성이 보였다. 산성은 복원 중이어서 일부만 그 형태가 드러났지만 성에 관한한 문외한으로서는 성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없었다. 성 안에 있다는 샘을 찾아 좀 더 올라갔다.

성 안에 복원중인 집수터에서 정상을 향해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마우정(馬雨亭)’, ‘매산 약수터’라는 표지판이 달린 샘이 보였다. 왕 노인이 말한 그 샘이다. 샘 주변 어디에도 미호천의 발원지라는 표시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왕 노인의 증언대로 ‘매산 약수터’ 혹은 ‘마우정’이라 불리는 이 샘이 미호천의 발원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모습이다. 지독한 가뭄이 한창이었지만 바위 사이에 집어넣은 파이프에서는 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물은 돌확으로 떨어졌다 돌확을 넘쳐 바닥으로 떨어지고 바닥에 떨어진 물은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마이산 초입에서 만난 샘까지 흘러 내려가는 것이다. 그 물이 양덕리 도랑을 지나 삼성면 덕정저수지에 모였다가 대소면을 지나 성산천에 이르고 진천군 이월면 산척리에서 한천과 만나 다시 백곡천으로 이어져 농다리로 흐른다. 농다리의 물길은 오창 여천리로 향하는데 그때 보현산에서 발원해 소여천, 동음천, 초평천, 원남제, 마송천을 거쳐 달려온 보강천과 합류해 큰 물줄기인 미호천을 형성한다. 드디어 보현산에서 발원한 물과 만나 한 몸이 된 미호천은 입상리와 신평리를 거쳐 청주시 문암동 까치내에서 무심천과 만나 다시 오송읍 쌍청리에서 병천천과 합류하고 세종시 합강에 이른다. 장장 89.2km의 거대한 미호천 물줄기를 배태하게 되는 어머니의 품속, 마우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글 김정애기자(취재지원 전숙자·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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