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처럼 품고 있던 시간여행을 떠나다
환상처럼 품고 있던 시간여행을 떠나다
  • 충청매일
  • 승인 2015.07.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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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한 여행

◇천오백년 전 왕의 존재를 느껴

공주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고 난 후에 떠오른 생각은 “그래도 공주까지 왔는데”였다. 백제의 고도답게 유물도 많고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만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무령왕릉을 보고 가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길을 나서 무령왕릉까지 걸었다. 걸어가는 길목에서 느끼는 기분은 공주라는 도시는 시간이 멈춰있는 곳 같았다. 백제시대 유적지들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높은 건물도 지을 수 없었던지, 길과 건물 분위기가 다른 현대도시와는 달랐다. 시간을 거슬러 백제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마도 단체여행이나 수학여행 정도로 이곳엘 왔다면 이런 분위기와 느낌들은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았다. 혼자만의 여유 있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령왕릉에 도착해 표를 끊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표지판에는 무령왕릉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3호로 지정된 송산리고분군에 포함돼 있으며 송산리고분군은 백제의 돌방무덤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 고분군에는 당시 중국 양나라 지배계층 무덤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해 축조한 벽돌무덤 형식이라고 설명돼 있다. 발굴조사 결과 무령왕릉 무덤 안에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묘지석이 발견돼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돼 있다. 1천500년 전 왕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들이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오전이고 평일이어서 인지 관람객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넓은 왕릉 유적지에서 나 홀로 천오백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덤이라는 생각과 스산한 날씨는 나를 조금 더 움츠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날씨는 비가 온 터라 축축했고 그나마 몇몇 사람들이 뒤이어 들어와 나처럼 느릿느릿 걸으니 그 표현이 가장 적당했다. 왕릉이 생겼던 그 시기로 돌아가 시간이 멈추었다.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만큼 왕릉 주변은 고요했고 그동안 내가 지내온, 익숙했던 시간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시간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높고 높은 빌딩들이 익숙한 현대 도시에서 벗어나 무령왕릉이 생기던 그 때를 가본다면 어떨까? 영화같은 상상을 해 보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10대의 풋풋한 사랑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감독 호소다 마모루’는 그 상상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일본의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도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만화 영화다.

성인이 되기 전에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여자주인공의 나이가 나와 똑같았다. 그래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빨려들었던 영화다. 마코토와 치아키라는 소녀와 소년이 주인공이다.

누구나 꿈꾸어봤을 법한 타임리프를 소재로 두 인물의 순수함을 극대화시켜 청춘을 그리워하는 성인들이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영화중 하나다. 사실 일본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면 흔히 ‘오타쿠(일본의 광적인 애니메이션광을 비하하는 말)’라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로 인해 그러한 생각들은 많이 사라졌고 일본애니메이션의 역사에 걸 맞는 작품들은 대중들의 환호를 많이 받고 있다. 그 중 하나가 10대 시절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한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다.

10대 소녀 마코토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타임리프(타임머신)를 통해 학교생활을 더 알차게 보낸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였던 치아키의 고백을 받고 난 후 마코토는 과거로 돌아가 결국 고백을 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돌아 갈수록 일은 점점 꼬이게 된다.

사실 치아키는 더 먼 미래에서 마코토가 있는 곳으로 타임리프를 이용해서 온 인물이었다. 치아키에 대한 믿음을 확신한 마코토는 치아키에게 고백을 하지만 치아키는 돌아가야만 했다. 타임리프의 횟수는 정해져 있었고 치아키는 자신이 살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에 마지막 타임리프를 쓴다.

미래로는 갈 수 없는 마코토는 결국 치아키를 보내고 만다. 치아키는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마치 꿈을 꾼 듯 치아키를 보내고 시간을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두 사람만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는 의문과 환상에 사로잡힌다. “나에게도 타임리프 능력이 있다면”하고. 영화 속에서 마코토의 이모는 몇몇 10대의 소녀들은 타임리프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주기도 한다. 무령왕릉 앞에서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던 것은 늘 환상처럼 품고 있던 시간여행에 대한 잔상들이 이 독특한 곳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들로 인해 내가 마치 타임리프를 이용해 백제시대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무령왕릉에서 나와 공주 시내 재래시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런 생각들은 다시 환상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 시장의 골목 풍경은 거대도시 서울과는 분명히 달랐다. 이러한 분위기는 좀 전에 가졌던 환상을 더욱 고조시켰다.

무령왕릉에서 느낀 신비로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현실로, 한국의 여느 시장의 북적거림으로 돌아왔다.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타임리프를 한 착각이 들었다. 시장의 냄새덕분일까?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코토와 치아키를 떠올리며 자꾸 웃음이 나왔다. 10대 소녀와 소년의 시간을 달리는 사랑이 절로 웃음 짓게 하는 영화다. 할머니들이 줄 서 빵을 사가는 시장 안의 베이커리에서 크림빵을 하나 사서 우유와 같이 아침을 먹었다. 힘을 내서 다음 목적지로 걷기 시작했다. 또 다른 환상과 상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나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글·사진/안채림(광운대 경영학&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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