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며칠 전 장례 예식장엘 가보니 조문객이 전혀 없었다.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민심도 뒤숭숭하다. 감염된 환자들의 처지가 측은하기가 그지없다. 숨진 환자는 이중방수백에 담겨 곧바로 화장한다. 인근 대전의 을지대병원에 입원한 예순다섯 살 할머니는 뇌경색으로 입원했다. 메르스 환자가 이 병원에서 나오자 간병하던 남편과 가족들과는 철저히 격리되었다. 할머니는 상태가 나빠져 임종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중환자실로 아내에게 가족이 쓴 편지 보내며, 편지를 읽어 달라고 전화를 했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딸의 편지를 읽는 순간 간호사들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편지 덕분에 다섯 시간 후 할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위 이야기를 들으니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생각난다. 주인공 그래고르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상사로부터 갖은 질책과 모욕을 참아가면서 살아가던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은 흉측한 모습의 갑충(곤충)으로 변해 있었다. 졸지에 그는 철갑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지난 5년간 가정을 부양하기 위한 그의 희생적 헌신은 무시하고, 가족들은 그에게 온갖 저주와 괄시를 퍼붓는다. 방안에 갇혀 가족들 던져 주는 썩은 빵조각으로 연명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괴물곤충의 등에 박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상처로 인하여 드디어 죽고 만다. 그러자 시신은 그대로 놔둔 채 모두들 즐거운 야유회들 떠간다. 그가 죽음으로써 가족은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부부가 자식을 낳고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아주 몹쓸 병(나병)에 걸렸다. 그 사절은 이 병에 걸리면 무조건 소록도나 산청, 라자로 마을로 가야했다. 그의 아내는 도무지 병든 남편을 혼자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이 잠든 사이에 면도칼로 남편의 고름을 긁어 모아 자기 팔에 상처를 내고 도배하듯 바르고 붕대로 감았다고 한다. 그래도 아내는 병에 걸리지 않고 그냥 생생하기만 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과 생이별 항 수 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나환자촌에서 봉헌을 했던 어느 신부의 체험담에서 간추린 것이다.

메르스 때문에 운명을 하면서도 가족들로부터 면회조차 하지 못했던 예순 다섯 살의 할머니! 나병에 걸린 남편과 헤어지기 싫어서 스스로 나병에 걸리기를 자청했던 아내와 남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온갖 굴욕을 참아 가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곤충으로 변한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런 모질고 가혹한 운명이란 말인가? “그거 그냥 더럽게 재수가 없으면 걸리는 거예요” 라고 말한 나환자의 대답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혹시나 이들을 ‘괴물’로 취급해 돌을 던지지나 않았는지! 스스를 돌아보자. 

누구나 ‘변신’에 나오는 괴물로 변할 가능성은 있다. 운명이란 참으로 오묘(奧妙)하다고 느꼈다. 행·불행 속에 사는 게 인생이라면, 행·불행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살아야 하겠다. 그 가능성을 따라 살다 보면, 영원성도 인식하게 된다. 행·불행의 가능성 앞에서 보다 겸허하고, 보다 감사해야 하겠다. 모진 운명과 가혹한 시련에 신음하는 이들을 보면, 괴물로 취급하지 말고 돌을 던지는 행위만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 따뜻한 자비와 사랑의 손길만이 영원성을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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