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확 청주상당도서관 사서

새로운 건축물을 토대로 사람이 모이면 도시가 탄생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 속에서 도시는 발전한다. 하지만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들이 쇠퇴하기 시작하면 도시는 퇴화하기 시작한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로 쓸모없이 껍데기만 방치된다.

청주에는 ‘동부창고 34동’이라는 아주 낡고 오래된 건물이 있다. 옛 연초제조창의 담뱃잎 보관창고로 한때는 담배를 연간 100억개비 생산하는 청주의 대표적인 산업체였다. 하지만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은 최근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재탄생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유지한 상태에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기존의 것을 모두 엎어버리고 새롭게 개발하는 우리가 즐겨하던 그런 것이 아닌 기존의 건축물을 유지하면서 재생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면서 ‘동부창고 34동’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게 되는 얄팍한 감이 생겼다. 콘크리트덩어리에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건물, 흉흉하다고 느낄 정도로 폐허가 된 건물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도시재생, 죽은 시설의 부활로 북촌 한옥마을과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을 꼽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의 한옥은 주민들이 한옥을 이용하여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전통공예공방을 유치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 서울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하드웨어인 한옥을 교체하지 않고, 소프웨어라고 할 수 있는 용도를 변경하여 건축물이 생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부창고 34동’ 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죽은 시설이 부활하고 있는 맥락에서 닮아 있었다.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은 재료와 완제품을 운송하던 폐허가 된 고가 철도길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산업시설을 이용한 고가 공원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도시가 변화하는 모습 등을 열 다섯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도시는 건축물로 이루어진 단순한 것이 아닌, 문화·예술·경제·과학 등 인간이 손닿는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골목길부터 아파트까지, 명동거리에서 신사동 가로수길까지 도시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유를 풀어가고 있다. 오르세미술관, 루브르박물관, 센트럴파크, 한강 등 워낙 유명해 눈에 익은 곳들을 사진, 스케치와 함께 엮어 설명하니, 어려운 건축이야기도 눈에 쏙쏙 들어온다. 도시와 건축물에 얽힌 탄생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 거기에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으로 도시를 해석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 확장되어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건축의 문외한도 이 책을 통해 건축물이 시사하는 풍요로움과 빈곤함, 희망과 절망, 공존과 경쟁 등 도시 속 건축물이 주는 수많은 양면성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이런 양면성에 의해 도시가 탄생하고 퇴화하는지, 도시의 가치를 상실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의 쏠쏠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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