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삼십년이 가까워지도록 집안을 손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무렵 전통 한옥을 개조한 이후 녀석들이 성년이 되어 각기 집을 떠났으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나보다. 물론 그동안 자잘한 것은 수없이 손을 보았지만 도배는 그 많은 짐을 처리하기가 만만치 않아 미루고 또 미뤄오던 참이었다. 누구라도 다녀가는 날이면 아내는 창피하다며 성화를 댔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손을 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안방 한쪽 벽면 벽지가 찢겨져 있었다. 아내는 벽지가 잘 뜯어지나 확인을 해보려고 그랬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일을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어수선하거나 찝찝한 분위기는 견딜 수 없는 성격인지라 그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 두 사람에게 고난의 대행군이 시작되었다. 도배 기술자를 불러 맡기면 수월할 일이었다. 그러나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처럼 빈집이었다면 응당 그리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도배를 맡기려면 삼십년 묵은 짐은 어떻게든 주인이 처리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은 집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터져 도배 전에 수리부터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 섣불리 도배 기술자를 부를 수도 없었다.

고심 끝에 돈도 아낄 겸 우리 부부가 직접 모든 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집수리 정보를 찾았고, 나는 동네 철물점을 오가며 재료를 사왔다. 단순히 도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나를 수리하거나 고치고 나면 또 다른 것이 보였다. 그때마다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도배는 요원하고 과외의 일이 점점 늘어났다. 겨우 한가지를 해결하기도 전에 해가 저물었다. 밤이 되면 잠은 자야 했다. 날이 밝으면 먹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치워두거나 묶어두었던 살림을 풀어야 했다. 묶었다 풀었다 하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야 했다. 일주일이면 넉넉할 것이란 계산은 일머리를 모르는 우리 부부의 희망사항이었다. 해도 해도 일은 끝이 보이지 않고, 끝낸 일도 별 표시가 나지 않았다. 일의 진척은 더디기만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집안 꼴을 본 어머니는 기암을 하셨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잖아도 세상 걱정을 당겨서 하는 어머니인지라 괜한 걱정을 하실까 염려되어 말씀을 드리지 않고 후딱 해치울 작정이었다. 그리고 일이 마무리되면 한 번 집으로 모실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일이 늦어진 까닭에 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도 고난의 대행군이 시작되었다. 연세가 많은 어머니가 힘든 집수리 일을 하실 수는 없었다. 일이 바쁠 때는 해먹는 것도 일이라며 어머니는 본가와 아들 집을 오가며 밥과 국을 해 나르셨다. 팔순을 세 해나 넘기신 어머니께는 그 일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하루에 서너 번씩 오가며 온갖 먹을거리를 해 나르셨다. 그러면서도 아들 며느리 병날까만 염려하셨다.

처음 하는 일이 힘에 겨워 온몸이 천근만근이고, 뼈 마디마디가 아팠다. 아침이면 손가락이 부어 구부러지지 않았고, 일어나려면 삭신이 쑤셔 ‘아이고!’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처럼 우리 집으로 출퇴근을 하셨고, 일하는 우리 부부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비닐봉지 하나를 내놓으셨다. 피로회복제 음료와 영양제였다. 그리고 저녁에 잘 때 하나씩 먹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기 편할거라고 하셨다. 괜스레 마음이 저려왔다. 집에 도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을 내 가슴에 도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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