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운명(運命)에서의 명(命)은 위태하고 불안하고 험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지나고 이제야 위험을 건널 수가 있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과도 같다. 어느 때보다도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이러한 시점을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명은 결실(結實)의 계절이며 내 안에서의 수확이며 스스로의 몸을 닦는 수행(修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만났던 사람이 가슴 깊숙이 자리를 하였고 어느 때부터인가 시작하였던 일이 생활 깊숙이 자리를 하였고 어느 때부터인가 시작하였던 일이 생활 깊숙이 자리를 하였으니 이제는 다음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함께 동행(同行)을 계속 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길을 달리 하여야 할 것인가의 명이다. 함께 가야만 하는 것도 하늘이 주는 명이요 서로가 달리 가야만 하는 것도 하늘이 주는 명이다. 또 이 일을 계속하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의 일을 찾아야만 할 것인지를 가리는 것도 명이 된다. 그리고 함께 가야할 명이라면 함께 가야할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고 달리 가야할 명이라면 달리 가야하기에 또 다른 준비도 필요하다. 이때에 이르러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마음이 있다. 아직까지도 굳건히 지켜왔던 슬픔이 넘치려 하고 아직까지도 애써 참아왔던 기쁨이 터지려고 한다.

또 지금까지도 고요를 유지하던 마음에서는 어느 순간의 조바심이 생기고 지금까지도 긴장을 풀지 않았던 마음에서는 해이함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에서는 모든 일이 다되었다 싶었을 때에 나타나는 새로운 갈망과 공허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외부(外部)에서는 그저 고요히 바라보며 한 점의 바람도 없는 것과도 같은 기운(氣運)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 자신(自身)의 마음과 생각이 고요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면 고요하기만 하였던 외부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명의 때에 나타나는 내부(內部)와 외부(外部)의 갈망이라고 표현을 한다.

한편, 자신이 그것을 아무리 갈망하더라도 내부와 외부가 함께 가야할 조건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함께 가야하는 명이 없다. 하지만 명은 헤어지는 것과 동행하는 것을 모두 명이라고 하였지만 헤어짐에서는 천명(天命)으로 통(通)하는 길이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노고가 헛되지 않고 지금까지의 만남이 헛되지 아니하며 지금가지의 노고가 헛되지 않고 지금까지의 만남이 헛되지 아니하며 지금까지의 수행이 헛되지 않을지 라면 자신 안에서의 올바른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초운(初運)의 때에서는 새로운 세계로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면 명의 때에서는 경(敬)한 신념으로 하늘의 길을 여는 시기라고 말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때에 이르러서 흐트러지기가 쉬운 마음과 태도와 생각과 자세 등을 올바로 유지하는 것이 명의 시점에서의 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경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노고와 만남에서 헛되이 흘러가 버리는 빌미가 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경을 똑바로 유지하여야 한다.

마치, 빙산을 녹이고 흐르는 물방울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강물에 이르고 다시 강물이 고요한 흐름을 멈추지 않았을 때에 대해(大海)에 이르는 것과도 같은 것을 명의 때에서 올바른 경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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