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5월에 접어들자 온 나라가 꽃의 향연으로 떠들썩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포도·와인세미나를 수목원이 있는 어느 소도시에서 개최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참석자들과 함께 수목원을 둘러보며 나는 여러번 놀랐다.

우선 아름다운 꽃과 시설물들이 너무나 잘 정리되고 배치돼 꼭 유럽에 있는 어느 궁전의 정원에 온 느낌이 들었다. 둘째는 관람객이 얼마나 많은지 입장을 기다리는 자가용 행렬이 족히 1㎞ 이상이 돼 보였다. 셋째는 관람객들의 대부분은 가족단위라 그들을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거기다 사족을 단다면 숲 해설가의 설명 또한 일품이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저의 이야기입니다. 숲 해설가 시험이 있다기에 경험 삼아 한 번 참가해 보았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웬만한 나무 이름이나 꽃 이름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을 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제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 있게 숲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상기 된 듯 보였으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저는 이 숲을 정말 사랑합니다. 제가 이 숲을 처음 걸어 본 것은 대학교 때입니다.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 장소로 자주 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을 약속하던 날도 또 아이를 임신 했을 때도 저는 이곳에 와서 저의 기쁨을 이 숲과 함께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가 돌이지나 걷기 시작할 때 저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아이에게 나무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제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저는 이곳에 와서 울면서 숲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숲은 그 때마다 저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숲에 대하여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십년 동안 이 숲과 함께 했고 지금도 이 숲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내면 저 아래로부터 울리는 그녀의 음성은 어느 사이 메아리가 돼 이산 저산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녀의 입에서 단어 하나하나가 나올 때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고 이야기해야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여러분! 저기 있는 튤립을 보세요. 참 예쁘죠? 화려한 색깔과 조화를 보시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튤립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예쁜 꽃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이 큰 바위 밑에 피어있는 하얀 꽃들입니다. 무슨 꽃 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냉이꽃입니다. 봄이면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비록 하찮은 들꽃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냉이꽃이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숲을 지켜온 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이 이어질지는 저도 자세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 기쁨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냉이꽃으로 압화를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한 겨울에도 냉이꽃을 보며 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꽃들을 눈에 담고 사진에 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잠시나마 저기에 서 있는 나무와 또 꽃들과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나무이름 꽃 이름을 아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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