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자연의 순환은 올해도 겨울 끝 다시 봄날이 왔고 그 봄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벌써 급행의 초여름 무성함에 들어와 있다. 5월은 초록의 푸르른 날씨와 맞물려 행사가 풍성한 달이다.

무슨 기념의 날들이 그리 많은지 몸 안팎이 분주한 나날이다. 그중에도 으뜸으로 손에 꼽히는 것은 어버이 날이다.

내 어릴 적엔 5월 8일은 어머니날이었다. 가부장적인 시대에는 이렇게라도 날을 만들어 세상의 어머니들께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었으나, 아버지라는 존재 또한 자식에게는 은혜의 대상이니, 어느 날부터 슬며시 어버이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100세로 가는 장수의 시대다.

예전엔 온갖 질병으로 60세를 넘기기가 어려워 집집마다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며 집안의 경사로 여겼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산업화 대량생산 속 먹거리나 모든 것들이 풍족해 지며 삶의 질은 높아지고, 의술은 날로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암도 조기 발견시에는 불치병이 아니며, 생존율도 높다. 햇수로 7년째 병상에 계신 팔십 후반의 친정노모는 간병인의 돌봄이 없으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속수무책 강보 속 아기다.

오랜 병고 속 이제는 알츠하이머까지 와 의사소통도 할 수 없고, 노인요양병원서 정물처럼 침대와 한 몸이 됐다.

옛날 좋던 풍채는 이제 뼈와 가죽만 남아 근육은 썰물처럼 다 빠져 나가고, 빈 쭉정이로 화석처럼 굳어 초점 없이 눈만 깜박이고 있다.

얼굴 표정에서는 고통이나 감정 변화도 없지만, 그러나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자식에 대한 기억이다.

자식은 어머니에게 있어 모든 기억을 놓아 버려도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본태성이다. 아주 순간이지만 딸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 힘겹게 단발마로 정확히 이름을 부른다.

좀 오래 있다 싶으니 몇 마디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이 이제 그만 집에 가란다.

불가사의하다. 모성은 그렇게 몸 전체로 자식을 기억하니 말이다.

장수의 시대라 하지만 태반은 내 어머니 같은 병상 속 노인들이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을 차지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점점 퇴행해 어린 아기로 회귀하는 것이다. 생로병사 속 인간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지인의 구순 어머니는 날마다 좋은 섭생과 운동으로 아직도 건강을 잘 건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주변인들의 눈치를 본다고 하신다.

더 오래 살려는 안간힘 같아 모양새가 안 좋게 볼일 염려란다.

하지만 오늘도 그 어머니는 힘을 내 운동을 하고 건강식을 챙긴다. 왜냐면 몸져누워 자식들 걱정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최우선이다.

오랜 수명보다 건강나이로 얼마나 더 구구 팔팔하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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