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셋째날, 길이 끝나지 않으면 어쩌지?(수원에서 오산)

▲ 수원 화성시 근처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하룻밤 머물며 화성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21일이라는 짧은 일정이 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모습에 신경쓰지 않는 것을

외모에 너무 집착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고독이 밀려온다

이 길이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막막함까지…

 

◇친구의 고향 오산시, 왠지 공감가는 도시

수원을 떠나야 하는 날이다. 수원화성 근처라 그런지 옛 건물들이 정감 있게 그대로 존재한다. 왠지 하루쯤은 머물러 있고 싶은 곳이다. 화성 행궁을 지나 팔달문 가기 전 까지 그런 풍경이었다. 발목을 자꾸 잡는 풍경. 하지만 머물 수 없지…

어쩐지 이 근처의 골목에 맛 집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그대로 골목으로 들어갔다. 생각 외로 밥집들은 많지 않았지만 칼국수가 먹고 싶어 굴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을 하나 골라 들어갔다. 내 큰 가방을 본 종업원 아주머니는 궁금한 것이 많으신지 자꾸 질문을 하신다. 곱게 화장을 하고 손톱의 매니큐어도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어쩐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제제(엄마) 생각이 났다고 해야 하나. 항상 예쁘게 꾸미고만 다니던 젊은 시절의 제제가 생각났다. 무언가 식당 일에 서투르고 어정쩡한 모습이 영락없이 식당 일은 처음인 아주머니였다. 그런 와중에 반찬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시는 마음이 느껴져 아침부터 배가 불렀다. 양이 많은 것을 다 먹은 탓이기도 하고.

팔달문을 지나쳐 오늘은 오산시까지 간다. 학교동기 중에 하나가 오산시가 집인 친구가 있는데 왠지 오늘은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오산시는 시골이라고 말하던 친구가 생각 난다. 할 것 없다며 놀러 가겠다고 해도 오지 말라 했다. 정말 그런지 오늘 꼭 보고야 말겠다 국도를 걷는 내내 생각한다. 경기도라 그런지 인도가 끊기는데 없이 정말 잘 되어있다. 이대로면 해남까지 무리 없이 걸을 것이라는 엉뚱한 자신감이 자꾸 생긴다. 걷는 것 말고는 힘든게 없어 오히려 아쉬운 느낌이었지만 이때는 자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에 사서 가져온 회색 맨투맨 티셔츠 하나로 삼 일째이다. 안에 긴 팔은 매일매일 빨아 찝찝함이 없지만 왠지 검정색 맨투맨이 입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는다. 검정색은 늘 진리지. 그만큼 검정색을 좋아한다. 반 정도 걸었을까? 오산시에 접어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국도변에 엉뚱하게 큰 유니클로 매장 하나를 발견했다. 아울렛처럼 시의 외곽지역에 크게 지어놓은 느낌이다.

넥 워머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모자로 얼굴의 반을 가린 상태에서 왠지 들어가기가 창피했다. 고민하다 뭐 어때 하고 결국엔 자동문을 지나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갔다. 항상 외적인 것이 중요했다. 집 앞을 나가더라도 화장은 필수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거리면 옷도 늘 신경을 쓰고 다녔다. 그게 피곤하다거나 번거롭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니 으레 그래야 하듯이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여행하면서는 모든 것이 사치였다. 어차피 화장은 지워 질 테고 꾸미기 위한 옷들은 더러워질 게 뻔했으니.

그런 상태의 내가 도로를 벗어나 현대 패스트 패션의 상징인 유니클로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여행 중이니 라는 핑계가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이 외적인 것을 너무 신경 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껍데기에 불과하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나의 모습에 신경조차 쓰지 않을 텐데 참 어린애 같은 생각 이었구나 싶다.

결국 검정색 맨투맨을 하나 집어 들고 오늘의 숙소, 오산시를 향해 계속 걸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새것의 크고 웅장한 아파트 단지들이 나를 반겼다. 시내의 생활공간에서 점점 다들 외곽으로 나와 거주공간을 꾸리는 도시들이 많은 것 같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오산시청에 가까워질 무렵 겨울이라 멈춰있는 분수를 하나 보았다. 가만히 멈춰서 있다가 분수를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내가 어디인지 알겠냐고. 바로 그 친구는 놀라며 볼 것도 놀 것도 없는 곳에는 왜 갔냐며 신나 했다. 비록 그 시간에 친구는 오산에 없었지만 마냥 신났다. 친구가 태어나 자란 곳에 있다는 공유감 같은 것이었을까.

◇야생으로 들어간 사내, ‘인투더 와일드’

‘인 투더 와일드’(감독 숀펜, 주연 에밀 허쉬), 시골과 가까워지는 기분에 떠오른 영화다. 인도에 있을 때 제제와 여러 번 봤다.

크리스토퍼라는 주인공의 실제 삶을 영화한 것이라고 한다. 크리스토퍼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무전여행을 떠난다. 불현듯 하루하루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던 그가 실종사건처럼 자신의 차를 강가에 버려두고 자연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사회에서 엘리트로 촉망 받던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고 가족과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길 위에서 살아 간다.

바다와 길, 산에서 산지 2년이 되었을 무렵 그는 그의 희망이었던 알래스카에 도착한다. 넓은 눈과 강에 매료돼 시간을 잊고 지내다 봄이 왔다. 눈이 녹아 강을 건널 수 없어 알래스카를 떠날 수가 없게 되자 그는 고립된 채 야생에서 발견한 버려진 버스에서 지내게 된다.

 결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먹을 게 없어 자연에서 채취해 먹게 된 독초 때문에 죽는다. 무엇이 그를 자연에 붙잡아 두게 만들었을까. 그의 삶이 해피앤딩 일까? 새드앤딩일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국도를 걷다 보면 문득문득 거대한 공간 속에서 고독함을 느낀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길에서 혼자만의 즐거움도 있지만 때로 이 길이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막막함이 온몸으로 전해질 때가 있다.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자연을 사랑했지만 자연 속에서 그 외로움에, 먹을 것이 없는 굶주림에 미쳐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체 자연이란 어떤 존재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영화다. 글 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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