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둘째 날, 두려움이 ‘살인의 추억’을 불러오고

▲ 강력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경기도, 안심마을에 그려진 벽화가 천진스럽다. 벽화를 보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수원·화성, 영화 ‘살인의 추억’ 연상

송강호 눈빛 연기, 걷는 내내 떠올라

지하도 속 사소한 소리에 가슴 두근

안심마을 벽화로 되찾은 마음의 평정

 

◇ 아침잠과의 전쟁

부서지는 기분. 첫 걸음을 끝내고 눈을 뜬 둘째 날은 딱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기분. 허벅지나 종아리가 뭉쳐서 몸이 딱딱하게 굳은 것 같았다.

 눈을 뜨니 아홉시가 넘었다. 생각 보다 늦잠을 잔 것이다. 그래도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잠과의 전쟁이다. 첫날 안양시에 도착해 곯아떨어지듯 잠을 자고 일어나 방안에서 늘 하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몸의 마디 하나하나가 저리듯 아렸다. 처음으로 오래 걸었던 터라 몸도 놀란 모양이다. 아직은 몸이 적응을 못한 것이거나. 하지만 몸이 풀리자 다시 걸을 준비가 되었단 듯이 개운했다. 스트레칭은 걷는 여행에서 필수! 오늘의 목표는 수원이다. 갑자기 수원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연락을 해볼까 하다 그만 두었다. 마음이 약해질 까봐.

늦게 일어난 만큼 배도 고팠다. 안양을 떠나기 전에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 근처 밥집으로 들어갔다. 식사 메뉴를 결정하는 것은 늘 힘들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을 테지만 맛있어 보이는 메뉴들이 너무 많다. 이래서 살이 빠지지 않나 보다. 벌써부터 집 밥 생각이 나서 백반을 주문해 먹었다.

아침도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때라 그런지 밥집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밥을 먹으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간다. 어제 아침에 먹은 하연이네 집 밥도 생각나고 괜스레 쓸데없는 자잘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제 떠나기 전에 잠깐 통화하던 친구는 아직도 자고 있을까? 지금 다들 뭐하고 있을까?

아침부터 카톡에 불이 났다. 국토대장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궁금해 연락을 한 것이다. ‘어디야?’ ‘오늘은 어디까지 갈 거야?’‘힘들지 않아?’ ‘안 무서워?’ ‘거기 화성 근처 아냐?’ ‘수원은 연쇄살인사건 났던 곳이잖아.’ 모두 걱정이다. 화성이니 수원이니 하는 지명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살던 내게 갑자기 뉴스에서나 봤던 사건들을 친구들이 떠올리게 해 주었다. 밥을 먹으며 뉴스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뉴스에 등장한 사건들은 끔찍했다. 그렇다고 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다. 목적지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했으니 지켜야한다.

배를 채우니 기운이 났다. 내리쬐는 듯 한 햇빛이 강한 늦겨울에 다들 시내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들과는 반대로 경기도의 끝을 향해 출발했다. 하루의 첫 시작은 늘 상쾌하고 달콤하다. 귀에 들려오는 노래가 신나기만 하다. 이 거리에 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기도 한다. 국도가 좋다. 걷는 사람은 나뿐이고 지나가는 것이라고는 바쁜 차들뿐이니 내 노래를 들을 사람이 없어 보였다.

안양을 벗어나기 위해 작은 지하도를 지나는데, 왠지 너무 무서웠다. 내가 지나가기엔 너무 비좁고 천장은 낮았다. 게다가 가로등 불빛이 너무 흐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하도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위쪽으로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양이다. 큰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 또 뒤를 돌아본다. 결국 이어폰을 빼고 걷는데 뒤에서 덜컹거리는 바퀴소리가 났다. 별거 아닌 것을 알면서도 놀란 가슴에 뛰어서 지하도를 빠져 나왔다.

비좁고 어두운 공간은 늘 무섭다. 지하도를 나와 밝은 곳에서 겁먹은 가슴을 부여잡고 뒤를 돌아보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폐품 수레를 끌고 오시는 것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약하고 작은 아주머니. 어둠 속에서 무엇인지 모른 채로 그렇게 겁을 먹었다니. 오래된 지하도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모습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시내 중심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과 분명히 달랐다. 안양시의 주변부, 외곽으로 가는 또 다른 삶이다.

아주머니와 나는 같은 방향으로 걷다가 안양시가 끝나기 직전에 아주머니는 고물상으로 들어갔고 나는 수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수원시에 진입했다. 수원 하면 최근에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느 도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유독 수원시는 살인사건과 관련이 깊은 도시처럼 인식돼 있다. 그 유명한 화성시와 가까워서 그럴까? 밤늦게는 나오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무서운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수원의 안심마을 벽화를 보자마자 무너져버렸다. 이 마을은 안심해도 된다는 뜻일까.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림들이 벽마다 그려져 있다. 가로등 아래서 보면 정말 예쁘겠다고 생각하니 밤에 나오고 싶어졌다.

숙소는 수원 화성 근처로 정했다. 밤에 나와 화성을 조금은 보고 가야겠기에 밤의 계획들을 세웠다. 오늘 지낼 곳은 장안문 뒤편 골목에 있는 모텔이다. 바로 옆에 한옥 건물들도 있고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방안에 들어가고 보니 하루의 피로가 썰물처럼 밀려 왔다.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저녁도 피자를 시켰다. 배달된 피자가 생각보다 작았다. 왜 사진과 배달 음식은 늘 다른 걸까? 투덜거리며 피자를 먹었다.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무척 많이 먹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자인가 보다. 조금 남겼다.

밤에 밖에 나가지 않은 것은 범죄에 대한 공포보다는 피곤한 것이 이유였다. 그렇지만 수원시에 도착하는 동안 계속해서 떠오른 영화가 한편 있었다. 송강호의 눈빛 연기를 잊을 수 없었던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이다.

 

◇송강호의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밥은 먹고 다니냐?”

행복한 영화는 아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덕분에 오싹한 기분들은 덤으로 달려왔다. 봉준호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여타 추리물과는 다르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당시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과 이 때문에 생겨난 여러 문제들을 꼬집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스릴러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들은 너무나 많다.

나는 ‘살인의 추억’을 개봉당시에 보지 못하고 최근에 보게 되었다. 영상문화론 교수님이 무조건 봐야 한다며 강조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자 마자 왜 이걸 이제 봤을 까 하는 생각이 물밀 듯 몰려왔었다. 눈물이 났고 당시의 상황에 분통이 터졌다.

경기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고 살해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수법이 동일해 같은 사람의 범행이라고 추측하지만 흔적이 남지 않는다. 박두만 역의 송강호와 조용구 역의 김뢰하는 기존에 늘 하던 수사방식인 ‘감’으로 때려잡거나 예상하는 피의자를 협박해 자백을 받아내곤 한다. 결국, 김상경이 자원해 수사를 도우러 경기도로 내려온다. 폭력은 배제한 심리나 문서 위주로 수사하는 서태윤 역의 김상경과 힘으로 수사하는 송강호 사이에는 갈등이 발생한다.

사건배경이 된 당시는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데모가 수시로 발생하는 때다. 수많은 경찰 병력들이 학생데모를 진압하러 가 시골에는 늘 경찰인력이 부족하다. 김뢰하는 영화 안에서 항상 군화를 신고 등장한다. 군인으로 데모세력들을 짓밟아 누르던 경찰을 상징하는 존재다.

모든 수사가 해결되려고 할 즈음 군사정권의 문제, 경찰 인력부족 등으로 안타깝게 무너진다. 박해일(박현규 역)이 범인 일 것이라고 장담하던 김상경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수사방식에서 점점 송강호스러운, 폭력적인 형사가 되어간다.

미국에서 정액 DNA 확인서가 도착했다. 범인은 박해일이 아니었다. “무엇이 잘 못 된 게 분명해”라며 우는 김상경과 그를 말리는 송강호. 터널 사이로 도망가는 박해일을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송강호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화면 밖의 누군가를 응시하는 모습.

연기 중에 배우가 렌즈를 응시하면 안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스크린 밖의 관객들을 의식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는 그 점을 이용한다. 관객 중에 범인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를 내뱉으면서 범인을 향한 것인 듯한 시선으로 뚫어져라 보는 송광호의 눈빛이 나를 먹먹하게 했다. 작은 마을의 살인사건에는 안중에도 없던 당시의 사회상황에 대한 분노가, 늘 미국에만 의존하던 한국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다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두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나를 울린다. 터널로 들어간 박해일인지 관객인지를 응시하는 장면과 형사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살다 사건장소에서 당시를 회상하던 송강호가 다른 누군가가 그곳에 또 왔었다는 말을 듣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또 다시 스크린을 응시하는 장면.

이 두 장면이 ‘살인의 추억’에서 최고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눈빛만으로 가슴에 무엇인가를 심어주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 할 까.

여자 혼자 길을 걷고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늘 주변사람들의 걱정을 동반한다. 그 걱정은 ‘살인의 추억’에서 등장하는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행이 설레지만 마음 한쪽에는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이 드는 이유다.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거나 억누르거나 해야 한다. 유독 경기도 화성, 수원시에서 생각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모든 두려움이 달아나기를 바라본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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