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응원과 함께 출발
무사히 완주하겠다 다짐
첫날 6시간 행군…몸의
반란 제압하며 목적지로
안양 시내 뒷골목, 정겹게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들

▲ 생각만 하고 있던 국토대장정!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 달이면 되겠지 싶은 마음에, 또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냐는 마음에 혼자 씩씩하게 걸어보자고 즉흥적으로 시작한 도보여행의 첫 도착지 안양시다. 골목길에서 홀로 노는 아이 발견. 무척 반갑다. 숙소 들어가기 전 재래시장 들려서 호떡도 사고. 나름 안양구경 하고 숙소로 입성!!

◇ 첫날, 서울 당산에서 안양으로

출발하기 전 기숙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삼일 간 당산 친구 집에서 신세를 졌다. 방학동안 늦잠 자던 버릇이 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친구 하연이 어머니는 아침부터 “여행은 잘 먹고 든든하게 시작해야 한다”며 닭볶음탕을 해주셨다. 학사에 있었다면 늦잠 자느라 아침밥을 못 먹었을 게 분명했다. 청주 집에서 먹던 집밥과 같은 밥을 먹으니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줌마는 여행 중에 먹으라며 간식까지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초콜릿과 누룽지, 코코아 같은 출출할 때 먹으면 좋을 만한 것들이다. 학사에서 가져간 옷과 소품들도 짐을 줄이기 위해 친구집에 덜어 놓을 만큼 가볍게 시작하려 했던 배낭에 간식거리들이 더해졌다. 은근히 어깨의 무게를 걱정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아줌마의 따뜻한 마음, 친구들의 응원, 가족들의 배려… 모든 것이 감동으로 밀려왔다. 주변사람들의 이러한 관심과 응원을 생각해서라도 무사히 완주하리라는 다짐이 드는 첫날 아침이었다.

오전 10시가 넘었다. 집 앞까지 배웅을 나와 준 친구를 뒤로하며 이어폰을 꽂고 걷기 시작했다. 늘 멋을 부리고 지나던 거리였다.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고 아직 서울 시내였던 터라 나의 커다란 가방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창피함도 있었다. 무거운 배낭에 칙칙한 색깔의 청색 잠바를 입고 선글라스와 입과 목을 가리는 보호대를 착용하고 걷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말 그대로 완전 무장이었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따뜻했다. 드디어 출발했다는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설레는 감정들이 배낭에서부터 나와 내 마음속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네이버 지도는 당산을 벗어나 안양천으로 나를 이끌었다. 생각보다 빨리 서울시를 벗어났다. 서울시와 안양시의 경계선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서울에서 연장된 도시 같았다. 이정표가 아니면 잘 구분을 하지 못할 만큼.

안양천 자전거도로로 진입했다. 산책로가 함께 있어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편하긴 했지만 주변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지루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안양천 산책길을 꽉 채웠고 운동하는 주부들도 보였다.

노선을 변경하기로 했다. 관악역 쪽으로 해서 안양시로 가기로 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진짜 여행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던 서울의 당산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고층빌딩들이 빼곡한 서울과 달리 낮은 연립아파트 건물들이 둥글둥글 곡선을 이룬 산을 보는 것처럼 편안했다. 걷다가 지하철 타고 싶다는 생각도 두어 번 했지만 아직은 후회 없이 신나기만 하다. 지루했던 안양천과 달리 점점 힘이 났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중간에 쉬면 포기하고 싶을까봐 점심도 건너뛰었다. 하연이네 아줌마가 싸주신 젤리로 버텼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발할 때와 다르게 몸도 무척 무거워졌다. 시내에 도착하자 오후 5시가 되었다. 오늘 묵게 될 숙소를 먼저 찾아야 했다. 숙소를 찾느라 힘겹게 걷는 내 모습이 외계인처럼 낯설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21km를 걸었다. 평상시에 하루 두 시간은 거뜬히 걸었지만 오늘 처음 6시간을 걸었다. 다리보다 골반이 부셔질 것 같았다. 뼈 마디마디들은 당장 멈추라고 소리치는 듯 했다. 배는 점점 고파왔다. 아무데서나 주저앉고 싶었지만 앉으면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학생들이 하굣길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느라 정신없는 모습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숙소를 찾아 들어선 시내 뒷골목은 세련되지 않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느껴져 정겨웠다. 골목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안양시에 처음 온 나를 반겨주는 듯 했다. 저녁 먹을거리를 사기위해 재래시장에 먼저 들렸다. 숙소에 들어가면 너무 피곤해 도저히 다시 나오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장풍경이지만 혼자 여행 중이라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호떡이었다. 배가 고파 무엇이든 다 맛있어 보였다.  호떡을 바리바리 싸들고 숙소로 돌아 왔다. 아줌마가 싸준 코코아를 따듯한 물에 타 호떡과 먹었다. 낯선 도시에 홀로 남겨진 외톨이 같은 느낌이었지만 혼자 호떡을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처음은 서툴고 어색하겠지. 곧 익숙해지겠지.’

사실 혼자만의 시간을 채 느끼기도 전에 나는 골아 떨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고단한 하루였다. 마치 영화 ‘더 웨이-The Way, 2010’(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감독, 마틴 쉰 주연)에서 톰이 평생 처음 낯선 도미토리(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방) 침대위에서 잠드는 것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 외톨이로 시작해 세상과 친구 되다

너무나 많이 봐 장면 장면이 선명한 ‘더 웨이’는 감독을 맡은 에밀리오가 아들 다니엘 역을 맡아 직접 출연해 실화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다. 유능한 안과 의사로 여행의 가치 같은 것은 잘 모르는 지극히 현실적인 아버지와 자기가 좋아하는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릴 줄 아는 아들 다니엘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다니엘은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전체 영화의 커다란 줄기 역할을 하는 존재다.

의사과정을 밟고 있던 다니엘은 어느 날 그것을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여행을 떠난 후 연락마저 끊겼으나 톰은 갑자기 프랑스에서 온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다니엘이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 시작점인 프랑스 생장 드피에트 포트에서 나쁜 날씨 때문에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톰은 소식을 듣자마자 아들에게 달려간다.

다니엘의 시신을 화장하고 경찰에게 받은 배낭과 소지품들을 보면서 톰은 아들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산티아고 길을 걷기로 한다. 왜 다니엘이 이런 무모한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궁금했다. 돈과 사회적 위치가 중요했고 여행을 좋아하지도, 떠나보지도 않았던 톰은 아들의 여행을 이해 할 수 없었던 자신과 다니엘의 마지막 대화모습을 떠올린다.

“인생은 택하는 게 아니에요, 아빠. 그걸 살아가는 거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꼭 묻은 채 아들의 유해를 배낭에 넣고 순례길을 걷는 톰. 다른 젊은 여행자들보다 느린 걸음과 침울한 그의 모습은 활기찬 젊은이들 사이에서 외톨이처럼 보인다.

톰은 첫날 밤 늦게 도미토리 숙소에 도착한다. 여행자들과 사귈 마음의 여유가 없는 톰은  오히려 여행자들을 경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의 유해가 들어있는 배낭을 계곡물에 빠트리거나 집시들에게 도난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행자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아들이 왜 그토록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괴팍한 성격에 완벽하고 이기적인 톰이 세상을 향해, 여행자들을 향해, 혹은 아들 다니엘을 향해 진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영화 ‘더 웨이’의 길이다.

톰이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모습이 마치 내 모습과 닮았다. 서투르고 두려운 무엇을 감추려는듯한 톰은 길 위에서 낯설어 하던 나와 같았다. 물론 나는 아들의 죽음과 같은 큰 시련은 없었지만 첫 날 6시간을 걸은 피로감으로 도미토리 침대에 누운 톰의 첫날 표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영화 속의 톰처럼 나도 곧 나만의 여행에 적응할 것이다.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 나는 늘 충동적인 무언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준비 없는 충동성은 때로 커다란 피로감을 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러한 충동이 조금씩 지쳐가던 대학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믿었다. 비록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니지만 내게는 이 길과 이 여행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더 웨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은 한 없이 달콤했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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