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지는 계절이다.

맑은 바람 속 더욱 환하게 핀 벚꽃들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보라고 부추기며 유혹을 한다. 천지간이 꽃구경 나들이로 소란스럽다.

끊어질 듯 이어진 산길을 따라 작은 산 두 개를 넘으면 화전을 만든 아버지의 산비탈 밭이 있었다. 식구가 많던 산골 생활의 녹록치 않았던 어린 날 풍경을 떠 올려보면, 아버지는 새벽부터 해가 질 때 까지 늘 밖에서 일만 하는 모습이었다.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 하시다 사십 초반에 깊은 병을 얻은 아버지는 만신창이 몸으로 식솔을 데리고 요양을 위해 좇기 듯 산골 생활을 택했다.

손위언니들과 새참을 가지고 아버지가 일하는 산 넘어 밭을 가는 날에는 어머니는 대부분 언니들 짝으로 나를 딸려 보내곤 했다.

밥 광주리는 언니들 몫이었고 꼬마인 나는 물주전자 차지였다.

아버지의 밭으로 가는 산길 옆으로 봄날엔 진달래와 생강나무, 그리고 산 벚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무더기로 피어 있던 진달래 꽃잎을 따먹기도 하고, 생강나무 꽃가지를 머리에 꽂기도 했다. 동백기름을 짜는 생강나무 꽃잎에서는 알싸한 생강냄새가 났다. 손에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상큼한 향이 배어 있었다.

꽃에 홀려 발걸음이 더뎌지기만 하는 어린 동생을 채근하며 언니들은 언제나 서둘렀다. 내 해찰에 아버지의 시장기를 거둘 새참이 한참 늦어 질것이라는 언니들의 조바심 때문이었다.

특히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바로 위 언니는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고지식하게 한 곳으로 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여전히 어릴 적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지대한 호기심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아버지 새참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은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진달래꽃을 꺾어 양은 주전자에 담아와 어머니께 선물을 했다.

뜻하지 않게 한 아름 꽃다발을 받은 어머니는 조용히 내게 이렇게 일렀다.

-아가! 꺾은 꽃은 꽃병에서 이삼일이면 시들지? 오래 꽃을 보려면 꽃나무 그 자리가 제일 좋은 거란다.

그리곤 어머니는 등에 업은 젖먹이 막내 동생과 함께 내손을 잡고 집 뒷산에 올라 꽃들 사이를 다니며 그 꽃에 얽힌 옛날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여섯살 인생에게 어머니의 말씀은 앞으로 세상의 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각인되었다.

어머니는 야단을 치기 이전에 생명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교훈과 여리고 약한 것들도 다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 후 봄이면 진달래 군락진 곳에는 문둥이가 숨어 있다 어린애들을 잡아 간을 빼 먹는다는 괴담이 흉흉하게 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봄 산을 뛰어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해 봄꽃놀이의 진수를 어머니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벌써 꽃들이 다투어 화사한 빛을 발하며 자꾸만 밖으로 불러내는 봄날이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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