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월기념관 건립이 지난해말 무산됐다. 최근 한 연구회에서 반야월기념관 재건립을 추진했지만 이 또한 무산됐다. 그 이유와 명분은 뚜렷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 작사로 유명한 故 반야월 선생의 친일행적 논란이 일자, 의병의 고장 제천에 친일파 기념관 건립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제천의병은 1895년(구한말)부터 1907년(정미의병)까지 전 계층에서 의병항쟁을 일으켰고, 가장 오래 저항했다. 이는 독립군의 모태가 돼 건국의 초석을 다졌다.

제천의병에 대해 의병 박정수는 “제천은 의병의 처음이요, 마지막인 고장”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제천은 의병운동의 고장이다.

특히 1907년 8월 제천 천남전투에서 의병들이 일본군을 섬멸했는데 며칠 뒤 일본군은 제천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이를 본 메켄지 기자가 ‘오늘 세계 지도에서 제천은 사라졌다’고 ‘대한제국의 비극’에서 회고할 정도로 제천은 의병활동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다.

제천 의병의 지도자는 강원 춘천 태생의 학자였던 의암 유인석이다. 의암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 을미사변) 이후 8도의 선비 600여명을 제천 ‘자양영당’으로 불러 모아 의병 투쟁을 주도했다.

이 같은 지역의 정체성과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코자 제천시는 1995년부터 해마다 ‘제천 의병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또 의병장 유인석이 유생, 농민 출신 의병들과 함께 활동했던 ‘자양영당’을 보존하고, 제천의병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시는 ‘의병의 고장 제천’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제천의병 전국 브랜드화’ 사업에도 나섰다. 의병공원과 의병광장 조성, 제천의병전시관 유물 기획 전시, 의병 사료 발굴과 국민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제천은 의병의 고장이다. 의병정신의 혼을 제대로 알고 알리는데 시민 한 사람으로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제천시민이란 자긍심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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