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한나라의 재상(宰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거짓말하니 거짓말 시리즈로 회자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거짓말로 곤혹을 시렸다. 그가 성완종 사건과 관련해 단순한 사실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2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1대만 사용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성회장과 친분이 없다면서 지난 20개월 동안 23차례 만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사실이 밝혀지면 구차한 변명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거짓말이 잦으면 이솝 이야기의 늑대와 소년 이야기처럼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는다. 이완구 총리는 “만약 제가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제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목숨까지 걸고 진실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고 있다. 이 말도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여론에 총리는 다시 ‘인간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격정적으로 말을 하다가 나온 말로 송구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총리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거짓말에 대한 윤리적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각으로 거짓말을 무조건 죄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그로티우스의 시각으로 거짓말의 결과에 초점을 주어 거짓말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만 죄악시하는 입장이다.

후자의 주장으로 보면 거짓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사기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흑색 거짓말이다.

둘째는 새로 산 옷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짓말로 백색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 경우 거짓말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비난은 받을지언정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셋째는 보는 입장에 따라서 죄가 될 수도 있고,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회색 거짓말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시각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도 중시한다. 많은 사람은 종교인이나 가르침을 주는 선생에 대하여는 아우구스티누스적 기준을 적용하고자 하고, 정치인이나 상인에 대하여는 그로티우스 시각을 적용하고자 한다. 총리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은 아니다. 대통령 다음의 국정 운영자로 모든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이에 일반 국민은 총리의 거짓말을 아우구스티누스 기준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기준에 의하면 이완구 총리는 여러 번의 거짓말로 죄를 짓고 있다. 국민은 총리가 3천만원 받은 것과 거짓말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총리는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죄악시하지 않고 백색 거짓말처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혀서 국민을 속이는 총리를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

국가 정책은 그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받는다. 불법 자금을 받지 않았더라도 거짓말로 신뢰를 잃은 총리가 이끄는 정책을 누가 신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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