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명예가 훼손당하거나 무고한 혐의를 받게 되면 곧잘 자살한다. 아무리 무고함을 호소해도 받아드리지 않으면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서양은 죽음으로 죄를 인정하고 죽음으로 그 죄의 대가를 치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경에서 예수를 배신 한 유다는 목매어 죽음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죄의 대가를 치르고자 했다.

이처럼 자살의 동기가 서로 다르니 죽은 자에 대하는 산자의 태도도 달라진다. 우리의 속담에 ‘죽은 사람에게 매질하지 않는다’, ‘죽은 자를 절대로 비난하지 마라’고 하고 있다. 우리 문화는 죽은 사람의 원한에 공감하는 것이 남다르다. 이것이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기도 한다.

지금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자신은 친박계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정권 창출에 이바지했는데, 자원외교의 희생양으로 표적 수사를 받는 것이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자살을 택했다.

검찰 수사를 받던 공직자나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먼저 검찰은 “강압 수사는 없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강압수사는 없었다. 그리고 심문 과정에서 변호사가 같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종종 검찰 수사행태와 관련해 애초 겨냥했던 수사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다른 분야로 사건을 확대하여 자백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외에 사생활을 파헤쳐 망신을 주겠다고 엄포를 주거나 친인척을 수사해 심리적 압박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이야기하는 조사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아닐 수도 있지만, 피의자에게는 자살의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성회장은 이러한 과도한 수사에 대해서도 비난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도 예외 없이 정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많은 문제가 민첩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소용이 없어 삶아 죽인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에서 발단돼 사건이 공표되면 ‘준 사람은 있어도 받은 사람은 없다’는 공직 비리의 법칙과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오리발부터 내미는 오리발 법칙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은 성완종 리스트와 녹취록에 대해 “황당무계한 소설”, “일면식도 없는 사람”, “사실이면 정계 은퇴하겠다”, “한번 만난 것이 전부”라는 일상적인 멘트로 대응하고 있다.

다음 법칙은 엿가락 작전으로 검찰 조사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엿가락 늘이듯이 질질 끌어서 일반인의 관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사건을 깔고 뭉개는 2차 지연작전을 쓰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런 비리 사건의 법칙에 예외의 법칙이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죽은 자의 말을 죽은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언제나처럼 힘있는 사람은 계속 정치를 하고, 기업인은 비자금을 만들고, 시민은 분노만 할 뿐 모든 것이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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