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변호사들은 오늘날에 이르도록 1649년에 죽은 메리 황후 2세를 위한 상복을 입고 있다고 한다. 이 해 국왕 월리엄 3세는 메리 황후의 죽음을 슬퍼해 영국의 모든 변호사는 상복을 비단으로 만든 로프와 검은 법정 드레스를 입도록 명했는데 그 명령이 취소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법조계는 우스갯말로 법조계는 황후의 상을 입었는데 언제나 벗을 수 없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법정에서 재판관이나 변호인들이 반드시 쓰기로 돼 있는 가발은 말버러 공(公), 즉 윈스터 처칠의 조상이 쓰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영국 변호사의 복장의 밴드, 즉 목에 걸치는 좋은 한랭사(寒冷紗)로 만든 앞걸이가 있는데 이 것은 현대 칼라의 선구가 되는 것으로, 영국 법정에서 이것을 걸치지 않으면 ‘변호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자’로 간주한다고 한다.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집안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유가(遊街)라 해 고향에 돌아오면 고향마을에서 축제가 열리기 마련인데 과거에 급제했다고 관직을 모두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실학자 이익(李瀷)이 급제자수와 벼슬의 수급(需給)을 적어놓은 것을 보면 당시에도 각종 과거에 급제한 등과자 수는 2천330명중 중앙(京職)과 지방(外職)을 모두 합쳐 얻을 수 있는 벼슬수가 500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이중 5분의 1을 넘지 않았다고 적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벼슬을 얻기란 역시 ‘좁은 문’이 되고 있다.

이익은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권문세도를 등에 업지 않고서는 벼슬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부정부패와 음모가 난무하고 붕당이 성할 수밖에 없었다”며 과잉급제에 대한 사회의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1천여명에 가까운 사법연수원생들이 수료했다. 이중 300여명이 판검사에 임명되고 나머지는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는데 배출인원이 많아지면서 변호사 과잉시대가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변호사들이 축적된 인생체험의 변론은 커녕 과열된 사건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법률서비스의 질적 저하 등 부작용이 늘어나는 것은 불문가지라 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아무리 일찍 급제했다 해도 나이 40이 돼서야 입사(入仕)해 70세에 치사(致仕·정년퇴임)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사람을 다스리려면 사서삼경(四書三經)만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는 인생체험의 역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한 치사제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변호사가 수도 없이 많으니 술과 의원, 판관은 묵을수록 좋다는 우리 속담이 무색해지고 있다.

학자금을 주기로 약속한 시간에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상대로 소송할 만큼 모두 일상생활을 법으로 해결하는 계약사회인 미국은 인구 당 변호사수가 우리의 90배가 넘는 반면, 우리나라는 계약보다는 타협이 많은 인정사회에서는 변호사 과잉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수료한 사법연수원생 중 종교·노동단체의 법률담당으로 취업하는 것을 보면 변호사도 본격적인 고용시대로 접어들었고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변호사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충북에서 개업하는 변호사수(73명)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수임료가 내려갔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변협이 질적 저하를 우려해 쌍수를 들고 반대하겠지만, 수임료 고가행진을 막고 법률서비스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변호사수를 대폭 늘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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