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공고한 건설 교통부의 자동차 전국번호판 디자인 공모 안내문을 살펴보자. ‘30년 된 자동차 번호판, 멋있고 알기 쉽게 바꾼다’라는 제목에 붙인 안내문의 요지는 전국 자동차 번호판을 세련되게 보완하기 위해 디자인 공모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새로 교부된 자동차 전국번호판이 식별성은 향상됐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미흡함으로 일반시민들로부터 디자인을 공모한 후 디자인 전문기관의 검토를 거쳐 현행 전국번호판을 보완하는 데 참고할 계획이며 입선작을 모아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라 했다.

혈세 낭비라는 비난 쇄도

아무튼 발급되자마자 디자인 논란에 휩싸였던 자동차 전국번호판의 개선안이라는 것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 측이 한양대학교 디자인 기술공학연구소에 의뢰해 문제점을 검토한 결과 현행 전국번호판이 여백과 글자 크기 등에 미흡했다면서 내놓은 2개의 개선안을 보면 무엇을 바꿨다는 건지 여간한 눈썰미로는 이전 번호판과의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나마 친절하게 개선안의 내용을 설명한 매스컴의 보도내용 등으로 디자인 보완을 확인했는데 그 개선된 디자인이라는 것이 “XX가 XXXX”로 된 번호판의 상단 XX와 하단 XXXX의 숫자 크기를 줄이고 한글로 표시된 상단 “가”의 크기를 확대했다는 식이어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즉, 1안과 2안 모두 색상과 번호판 크기는 그대로 두고 하단 숫자의 크기를 19% 줄였다는데 상단의 경우 1안은 숫자 크기를 44% 줄이는 대신 문자는 19%확대했고 2안은 숫자를 25% 축소하면서 문자는 45% 늘린 것이라 한다.

디자인 전문기관의 연구용역을 거쳐 식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외관상 멋있도록 색상, 글자배열, 글자크기 등을 개선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안목이 이 정도인지 답답할 뿐이다.

“건교부가 번호판 크기, 색채, 정보사항 등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디자인 수정을 의뢰했기 때문에 현행 번호판 디자인에서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는 한양대 디자인 기술공학연구소장의 말은 더욱 할 말을 없게 한다.

실패한 1안의 디자인을 고집할 바에야 무엇 때문에 전문 디자인 용역 기관에 디자인을 다시 의뢰하며 번거롭게 굴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건설교통부의 심중이다. 새로운 자동차 번호판에 대한 대부분의 여론 역시 1안 때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이다. ‘그냥 쓰지 저러려면 뭐 하러 바꾸는 건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잠잠히 있으면 국가예산에 축이라도 내지 않으련만 혈세가 아깝다’는 등의 비난이 소나기 같다.

종전의 번호판보다 오히려 짜임새도 모양도 내용도 전혀 못한 것을 ‘새롭게 바꿨다’고 우겨대며 선택을 강요하는 건교부의 정책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자조적인 의견들도 적지 않다.
자동차번호판 디자인에 대한 논란에서도 미뤄볼 수 있듯이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제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자인이 곧 생활이라 해도 좋을 만큼 디자인은 우리 일상의 삶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 일관성 있었으면

그러나 순수 미술과는 달리 디자인은 소비자라는 평가자가 있으므로 그를 충족시킬만한 객관성을 지녀야만 한다. 디자이너가 소비자인 대중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전개한다는 것은 디자인의 목적성과 실용성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교부가 자신의 취향과 고집으로 만들어낸 번호판에 디자인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인터넷 투표와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서 다음달 최종 번호판 모델을 확정, 4월초부터 보급될 예정이라지만 이번 모델은 한시적인 것이고 건교부는 또 다른 자동차 번호판의 색상과 크기를 포함한 전면 개편안을 오는 6월말까지 마련해서 내년쯤 새 번호판으로 교체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올해 번호판을 교체한 30만대의 차량은 불과 1년 조금 넘는 기간에 세 번이나 번호판을 바꿔다는 수난을 겪게 될 테니 불편과 비난의 표적이 될 새로운 차번호판의 운명이 처량하기만 하다.

류경희 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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