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벌써 먼 남녘땅에서는 산수유와 매화가 피고 있다는 꽃의 전갈이다. 봄의 절기인 경칩도 지나고, 추운 겨울을 당당히 건너온 뭇 생명들이 기세등등하게 번식하는 계절이 다시 왔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이삼일 후엔 봄의 환한 기운과 햇살 앞에 맥을 못 추고 물러선다.

큰아이보다 두 살 위인 시외사촌조카가 이 봄에 사내 연애한 아가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예식장 혼잡을 피해 일찍 간 덕분에 오랜만에 친인척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식장 안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다른 집 하객들과 뒤섞여 혼잡해진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삶의 풍습과 양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 중 혼례는 서양식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이젠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혼 풍경이 판박이처럼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엇 비슷하다. 결혼식은 한 시간 안에 사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끝난다. 그리곤 부조금 접수대에서 받아 든 식권으로 뷔페로 차려진 식당에서 다른 집 하객들과 얽혀 식사하는 것이 요즘 결혼식 대세다.

큰언니가 혼례식 올리던 풍경이 어린 날 내 눈엔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언니는 젖 뗀 아기 때부터 어린 나를 엎어 키운 엄마 같은 사람이다.

친척 아재들은 집안의 안마당 안에 넓은 광목 차양막을 치고, 마당가득 멍석을 펼쳐 깔아 혼례상을 차렸다. 며칠 전부터 우리 집 부엌과 사랑채엔 잔치 음식 준비로 일가친척들과 동네사람들로 북적였다.

엄마처럼 따르던 큰언니가 먼 곳으로 시집을 간다는 말을 듣고 서러워진 나는 한시도 언니 곁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결혼상대도 정해지지 않은 몇 년 전부터 언니는 신부수업으로 십자수로 베갯잇과 같은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했던 언니는 연애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아버지가 정한 지금의 형부를 한번 본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결혼에 대한 상식으로는 어이가 없지만 사오십년 전의 시골에선 흔한 혼사풍경이었다.

혼례는 일가친척으로 이뤄진 씨족부락에선 큰잔치였다.

아침부터 언니는 곱게 연지곤지 찍어 화장을 하고 원삼과 족두리를 쓰고 방안에서 혼례식을 위한 준비를 했고, 색종이로 장식한 코로나택시를 타고 온 형부는 택시에서 내려 사모관대를 차려 입고 집 앞 멀리서부터 친구들의 무등을 타고 앞마당까지 들어왔다.

밤늦게까지 짓궂은 동네청년들의 새신랑 다루기는 끝끝내 빼던 새색시의 한바탕 노래와 할머니와 어머니가 준비한 푸짐한 술상이 나오고서야 멈추었다.

참 아련하고 순박한 큰언니 시집가는 날의 풍경이었다.

천편일률적인 치루기 위한 행사가 아닌 정말 축하 속에서, 집안의 기쁨으로 두루두루 음식을 나누며 십시일반 준비한 정성의 부조금을 나누던 풍경은 이제 퇴색한지 오래다.

머잖아 내 두 아이들도 제짝을 찾아 혼사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그 중 한 아이만큼은 북새통의 예식장이 아닌 마당 넓은 곳에서 혼례를 치르고 싶은 어미의 소박한 마음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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