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제목은 무겁지만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그런 것들을 그저 응축해놓은 용어에 불과하다. 21세기를 ‘통섭과 융합의 시대’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지난 9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2015년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의 축하개막행사에 다녀왔다. 참으로 간만에 느껴본 흡족하고 유쾌한 자리였다. 동아시아문화도시는 한·중·일 문화장관들이 회의를 통해 각 나라별 대표도시를 선정해 전시, 학술, 공연, 시민교류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국제문화행사다. 2015년 동아시아문화도시에는 중국의 칭다오, 일본의 니가타, 한국의 청주가 선정됐다. 선정된 도시에서는 상호간 문화를 교류하며 이를 통해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문화장벽을 없앰으로써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문화감동, 문화행복을 누리자는 것이 동아시아문화도시 행사를 하는 근본 취지이다.

나는 지난 9일 있었던 동아시아문화도시에 대해 이야기 하려함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문화도시 행사를 통해 진정한 통섭과 융합이 무엇이며 문화예술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며칠동안 봄이라도 온 듯 훈풍까지 불던 날씨가 오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두터운 겨울옷을 걸쳐야 될 정도로 쌀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열리는 행사장은 빈자리가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한·중·일 삼국의 예술인들이 무대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열과 성의를 다하는 예술인들에게 관람객들은 거침없는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에서 온 다섯명의 북치는 젊은이들 공연은 관람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폭풍우를 만난 선원들이 바다 용신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배 바닥을 두드린 데서 기원했다는 북연주가 감동을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열정이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북을 쳐댔는지 공연도중 북이 찢어지며 채가 가죽에 끼었다. 그래도 연주자는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모든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내는 젊은 예술가에게 감동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에게 관람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공연장 안에는 국적도 없었다. 통섭이었다. 과거에 대한 미움도 없었다. 융합이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예술인들과 감동받은 관람객이 한 덩어리 된 화합만이 있을 뿐이었다. 문화와 예술은 그런 것이다. 혼이 없이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기교 승한 예술은 인간을 감동시킬 수 없다. 예술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때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 것은 아닐까?

가끔 주변에서 “누가 본다고 그래? 대충대충 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고지식하게 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바보스럽고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무능력자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혹여 진심 없이 감동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눈속임일 뿐이다. 그런 속임이 사람을 분열시키고 세상을 불신하게 만든다. 북치는 일본의 젊은 예술가를 보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보다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를 생각하게 해준 자리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