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잡힌 뒤 이야기 본격 시작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길을 가던 여성들이 잇달아 살해된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지만 마땅한 단서도 없는 서울 동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던 형사 태수(김상경)는 특유의 ‘촉’으로 우연히 접한 뺑소니 사고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뺑소니 사고 조사차 경찰서로 임의동행했던 이는 알고 보니 연쇄 살인마 조강천(박성웅).

운 좋게 연쇄 살인범을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 태수는 마지막 희생자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생의 시신도 찾지 못한 상황, 분노한 태수에게 강천은 한 마디만 남긴다. “찾아봐.”

영화 ‘살인의뢰’는 범인을 뒤쫓는 기존의 범죄 스릴러 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나 살인범을 잡고 난 뒤부터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된다.

조강천을 잡은 뒤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술이 없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태수는 우연히 조직폭력배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여동생의 죽음 이후 연락이 끊겼던 매제 승현(김성균)을 발견한다.

해물탕을 유독 잘 끓이던, 착하고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승현은 갓 임신한 아내를 잃은 슬픔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로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강천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범죄 스릴러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정체조차 알 수 없었던 범인을 향해 수사망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극도의 긴장감일 터.

일반적인 장르의 공식과 달리 범인의 정체를 일찌감치 공개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2008)처럼 ‘살인의뢰’는 연쇄살인범을 극 초반에 검거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사형 선고까지 내린다.

‘추격자’가 범인인 줄 알면서도 잡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마지막 실종 여성의 희생을 막기 위한 전직 형사의 고군분투를 치밀하게 그려냈다면 ‘살인의뢰’는 시신이 묻힌 곳이라도 알고 싶은 피해자 가족의 사적 복수에 대한 얘기다.

영화는 1997년 이후 사형제도가 집행되지 않고 있어 극악무도한 살인범일지라도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피해자 가족의 분노와 슬픔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거대한 산’과 같은 살인마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은 거대한 권력 앞에 절대 약자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소시민의 분노를 응축한 듯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