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긴 설 연휴 끝 부산스러웠던 시간들도 뒤로 한참은 물러난 듯한 한가한 나만의 시간이다. 여러 가지로 심란하고 소란스럽던 마음도 다시 제자리로 평정을 찾아 고요해진다.

요즘은 손안의 작은 컴퓨터인 스마트폰이 있어 예전 흔하게 썼던 손 글씨 편지는 지인들에게 보내지 않은지 오래됐다. 빠름과 즉각적인 반응의 편리함이 있다는 이유로 SNS에 나 또한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몇몇 지인들에게 짧은글로 명절 안부를 보낸다.

친한 S선배는 작년에 참척을 잃은 깊은 슬픔 속에 있다.

사실 황망한 일을 당한 그 당시에는 정신을 붙잡고 지탱할 힘도 없으니 주변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냈으리라. 일 년이 지난 지금이 어쩌면 더 새록새록 상처가 돋아나 깊은 나락의 또 다른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다.

근 반년만의 연락이다.

수 분후 그녀에게서 답신이 왔다. 내 예상대로 우리 집 근처에 살던 아파트를 처분했고, 상당산성 너머 시골로 이사를 했단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끝내 머물지 못하고 경기도의 연로한 친정어머니 곁에서 또는 서울의 직장생활을 하는 아이들 곁에서 그렇게 이사한 집을 떠나 어지럽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우울함이 도가 지나쳐 미친 듯 날 뛰면, 지켜보는 어머니를 비통에 빠뜨리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학하는 세월을 보내기도 했단다.

그래도 핸드폰 속 그녀는 평정을 많이 찾은 듯 보인다. 그녀의 성정이 조용하고 활달하지 못하니 그동안 여러모로 도움을 받은 주위 지인들에게도 살뜰하게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고 미안해한다. 나는 일상적인 평범한 말로 앞으로 살아가면서 차차 나누면 된다고, 그녀를 위로한다.

그렇게 그녀와 전화를 끊고 나서 한때 유머처럼 항간에 떠돌던 나이든 중년여인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다섯 가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돈, 딸, 친구, 여행, 애완견이다.

씁쓸하지만 남편은 그 다섯 가지 항목에 들어있지 않다. 그만큼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중년으로 오기까지 그녀들의 가정사가 우여곡절의 신산함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관계의 불화 속에서도 인간관계가 단절하지 않고 사회성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의 수다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사망하는 이유가 관계 회복의 탄력성이 없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회복의 탄력성은 내면의 근육을 키워 어떤 역경과 고난도 내칠 수 있는 힘을 키워 준다. 그것이 여자들의 수다이다.

사내들에게만 있을 것 같던 우정은 사실 여자들에게 더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일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S선배와 나와의 이십여년 넘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관계를 봐도 그렇다. 때론 가정사가 바빠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결국엔 의리까지는 아니라도 우정의 긴 끈이 지속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따뜻한 봄날이 오면 그녀는 자신이 돌아올 시골집에 놀러 오라면서, 자고 가면 더 좋고 하며 내게 짐짓 목소리를 밝게 말한다.

이제 S선배는 짙게 드리운 슬픔을 걷어내고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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