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수필가 오혜숙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수필가 오혜숙
  • 충청매일
  • 승인 2015.01.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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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숙 수필가

긴 겨울날이었다.

산골의 겨울 한뎃바람 속 코흘리개들은 추위에 얼굴이 빨갛게 얼기 일 수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변변치 못한 살림살이에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 입힐 형편들은 아니어서, 명절때 어쩌다 사주곤 했다.

손끝이 야무지고 맵던 어머니는 겨울이 되면 작아진 털옷들을 실로 풀어 다시 새 옷을 짜 우리 형제들에게 입히곤 했다.

털실을 가지고 대바늘로 짜는 옷은 금방 시장처럼 돈을 주고 사면되는 옷이 아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만드는 이의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몇날며칠 손꼽아 기다려야만 했던 옷이다.

미리짐작 눈대중으로 손뜨개질을 하다가 어머니는 우리들을 곁으로 불러 짜던 옷을 입혀 보며 옷의 크기를 가늠하곤 했다.

그 옆에서 우리는 하릴없이 화롯가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고, 군밤을 굽다 눈알이 빠진다고 화들짝 놀라 뒤로 나뒹굴기도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의 겨울밤은 유독 빨리 어둠이 밀려 와 캄캄하고 적막했다.

종일 산과 들에서 강아지처럼 뛰어 놀다 들어온 형제들은 초저녁부터 하나둘 고른 숨을 쉬며 잠들어도 오로지 늦은 밤까지 호롱불아래 어머니는 잠들지 못했다.

어린자식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추위를 막아줄 따뜻한 옷을 짜 입혀야한다는 일념으로 지새는 어머니의 하얀 밤은 짧기만 했다.

어느 날 아침 우리들 머리맡에는 여러 날 밤 어머니가 잠을 반납하고 만든 옷이 선물로 놓여 있곤 했다. 새 옷에 뛸 듯 좋아하는 자식들 모습이 어머니에겐 그간의 노고에 대한 품삯이었다.

손위 언니들도 어머니를 닮아 솜씨가 좋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은 일과 결혼으로 집을 떠나 함께 한 시간들이 별로 없었다. 그중 네 살 터울이던 손위언니는 나와는 별 다툼도 없이 많은 시간 함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잘못을 하고도 고집을 굽히지 않던 내가 때때로 부모님의 꾸지람에 밥도 안 먹고 서러움에 엎어져 있으면, 슬며시 상을 차려 내 손을 잡아끌며 때 늦은 밥상 앞에 앉히곤 했다.

초경을 막 시작한 그 언니가 어느 날 어머니 옆에서 남은 자투리 실로 뭔가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귀까지 덮어 내려 쓸 수 있는 커다란 방울 털모자였다.

얼음이 꽝꽝 언 무논으로 썰매를 타러 가는 내 머리위에 그 앙증스런 모자는 보기도 당당히 씌워져, 덕분에 겨울날임에도 땀이 날정도로 빙판 위를 씽씽 누볐다.

어머니와 언니의 정성스런 옷과 모자가 내 유년의 겨울을 한층 따뜻하고 서정적이게 했다.

어릴 적부터 심성 고왔던 그 언니는 지금 신심 깊은 목회자의 아내로 살고 있다.

집근처 대형마트의 옷 매장엔 따뜻한 겨울방한용품들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진열대 한 구석의 토끼털 귀마개를 달고 있는 모자에 반해, 덜컥 충동구매를 하고 만다.

논두렁길 따라 내달리던 유년의 겨울이 한순간 그리워져, 이 나이에 좀 주책없어 보일지라도 그쯤은 감수하면서 털모자를 쓰고 이 겨울을 누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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