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좌구산 황 장군을 만났다. 우리가 만난 지도 어느덧 삼십년이 넘었다. 그때는 그가 장군이 아니라 대학 새내기였다. 조그마한 키에 동그란 얼굴, 커다란 눈의 그는 첫눈에도 퍽 순해보였었다. 그는 법대를 다녔고, 나는 국문과를 다녔다. 나는 그를 문학회에서 만났다.

같이 대학을 다녔고 군대를 갔다 와 졸업을 했고, 결혼을 했고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장에서였다. 그의 딸아이도 졸업식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그때 주류도매상을 하고 있다고 했던 것 같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딸아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모습이다. 그럴 정도로 감성이 풍부한 그였다. 그러다 아파트 재건축에 관여해 주민대표를 하다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온 후 한동안 소식이 끊겼었다. 그 이후 나도 한동안 그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연히 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동안 그는 장군이 돼 있었다. 정말로 뜻밖이었다. 그가 장군이 되다니….

우리는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 물어볼 것도 많았지만 쉽사리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저 술만 마셨다. 세월만 갔을 뿐 그 이전과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그가 장군이 됐다는 말에 뭔가 어색했다. 그런 감정의 원천에는 그가 신을 받은 무당이 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뭔가 내 속을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경외심이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랜만의 만남을 그날은 그렇게 끝냈다. 이후 생각이 날 때마다 그를 만났다.

내가 그를 만나러간다고 하면 아내는 매번 복 조르듯 졸랐다. 그것은 매번 똑같은 주문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에 대해 물어보고 오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황 장군에게 나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평소 나는 운명에 대해 필연도 우연도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때로는 필연이 때로는 우연이 서로 교차하며 상황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확신해왔다. 따라서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는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제 팔자 제 자신이 개척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렇게 황 장군을 만나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내는 무척 아쉬워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열시가 다된 시간에 술이나 한잔 하자며 전화가 왔다. 매번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만났지 황 장군이 내게 먼저 전화를 건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 내 등 뒤에다 대고 아내가 말했다.

“오늘은 꼭 물어보고 와.”

황 장군은 자신의 신당이 있는 부근 술집에 혼자 앉아 있었다. 벌써 일잔을 했음이 벌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게 황 장군은 왜 이렇게 살기가 팍팍한지 모르겠다며 푸념부터 쏟아놓았다.

대학 졸업 후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하다 보니 마누라만 고생시켰다며 자책했다. 가장이면서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 다른 집 아이들처럼 풍족하게 키우지 못했다며 한탄했다. 당장 앞가림조차 힘에 겨우니 앞날에 대한 희망은 품을 수도 없다며 좌절했다. 나는 황 장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막막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내가 하소연을 하고 황 장군이 내게 알려줘야 순리가 아닌가.

그날 술집에서 나온 우리는 더 마시기 위해 동네 편의점에서 술을 사가지고 황 장군 신당으로 갔다. 황 장군은 술상을 보기위해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신당에 엎드려 절을 했다.

“신할아버지! 우리 황 장군 손님 좀 들끓어 돈 걱정 안하게 해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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