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혜 SK하이닉스 C-PKT팀

누구에게나 제2의 고향이 있다. 내게 제주도가 그렇다. 지난 겨울, 애잔한 향수를 안고 고향을 찾았다. 이번엔 ‘별빛 투어’를 하는 표선면 근처 낭만 가득한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했다. 드넓은 한적한 도로 사거리 한 켠에 오름을 병풍 삼아 주인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난 숙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까만 개 한 마리와 그와 비슷한 덩치의 옅은 금빛의 개가 주인보다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내가 이곳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유일하게 지붕에 올라가 아름다운 제주를 만끽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짐을 풀자마자 사다리로 연결되어 ‘하늘과 맞닿은’ 지붕에 조심스레 내디뎌 올라가니 눈앞에 선명한 오름의 자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거뭇해지는 저녁 하늘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몇 채 없는 조그마한 집들의 굴뚝마다 하얗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지붕을 독식하여 넓게 펼쳐진 제주의 세상에 들어온 나는 비로소 풍요로움을 느꼈다. 문득 어릴 때 다락방에 들어가 나만의 공간으로 채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누워서 다시 본 제주의 밤하늘은 비단 바다뿐만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별빛하늘 또한 참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가만히 있다 보니 조금씩 한기가 느껴왔다. 다시 내려오니, 반갑게 맞았던 까만 개 한 마리가 몇 걸음씩 앞장서서 걷다 힐끔 나를 쳐다보며 따라오라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어디론가 나를 데려다 줄 것 같은 기분에 뒤를 따라 쫓아갔다. 금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휴대폰의 손전등을 작동시켰다. 숙소 뒤편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몇 번인가 겁이 나서 걸음을 멈추었지만 영리한 개는 이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한걸음에 달려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괜찮다고 용기를 주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이윽고 영리한 개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빼곡히 가득 수놓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려고 이 녀석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걸까? 우린 서로 다른 언어와 몸짓을 이해하며 여기까지 왔고 함께 이 공간에서 자연을 느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제 그만 됐다며 영리한 개는 저만치 앞장서서 가버렸다. 나를 안내해주는 영리한 개는 어딘가 뜻밖의 장소를 알려주려는 게 아닐까? 어딘가 홀린 것처럼 나는 개 뒤를 쫓아 계속 깜깜한 어둠 속 풀숲과 엉겅퀴들을 헤치고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거대한 평지가 나왔지만 형상만 보일 뿐 모든 게 깜깜했다. 개는 자신의 덩치에 딱 맞는 수풀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나를 지켜 줄 거란 믿음에서 시작한 짧은 모험은 수많은 별들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장소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영리한 개가 단지 산책할 상대가 없어 나를 선택했다 해도 프로도가 되어 떠난 흥미진진한 느낌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또다시 선택하지 못할 그 때의 선택을 나는 지금도 아주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순간의 선택이 삶을 좌우한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나와 상대의 마음을 신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그렇게 얻은 환상적인 부산물은 더욱 값진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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