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난히 날씨가 좋아 과실은 물론 대부분의 농산물이 풍년이다. 옛날 같으면 농사가 풍년이면 농부들이 웃어야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울어야할 지경이다. 농산물시장이 개방돼 저렴한 농산물이 중국, 미국 등에서 마구잡이로 수입되는데 반해 국내 농업정책은 수급조절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군 문광면 한 농민은 자신이 몇 달간 애지중지 기른 배추를 갈아엎었다. 김장철을 앞두고 있지만 청주시 농수산물 도매 시장에서 배추 8kg 기준 특등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50%가 떨어진 3천원에 거래되고 있어 인건비와 유통비도 되지 않아 배추를 출하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인 상황이다. 배추를 뽑지 않고 땅에 묻는 농부의 속이 타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사실 농산물 수급조절이 안됐을 경우 이 같은 일은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고 충북 뿐 아니라 전국 공통 과제다.

정부는 세계에 농산물 시장을 선언한 만큼 그에 따른 수급조절 등 농산물 정책을 과학적으로 정립해 실시해야 한다. 기후변화 및 소비경향 등을 파악해 다음해 농산물가격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생산이 조절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농업정책 시스템을 정부차원에서 갖춰야 한다. 전국 농산물 시장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일사분란하게 실시하도록 해야한다.

문광면의 이 배추 농가는 지난해 절임배추를 만들어 20㎏짜리 2천여 상자를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올해는 주문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판로가 막혔다. 이농가를 비롯, 괴산지역에서만 100곳이 넘는 농가가 배추밭을 갈아엎거나 예초기로 배추 몸통을 잘라낸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배추 수급 조절을 위해 계약재배사업을 실시했지만 농산물 가격안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농식품부가 산지농협을 통한 배추 계약재배 목표물량은 10만5천t이었으나 산지 재배 농민들이 가격하락을 우려해 배추농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만약 계약 전체 물량이 재배됐다면 올해 버려지는 배추는 더 많아질 뻔했다. 농식품부는 가격이 폭락할 경우 생산자와 유통업자, 학자 등으로 구성된 배추 수급조절위원회를 통해 시장격리 결정을 내리고 산지 폐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또한 엄청난 혈세 낭비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올 여름에는 양파풍작으로 양파 저장시설이 부족해 도로에 산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 농산물이 이처럼 해마다 수급조절실패로 가격불균형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 농업은 심각한 좌초위기를 맞을 수 있다. 좀 더 철저한 계획과 실행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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