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스치는 창 밖 풍경을 보며 차안에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을 즐기는 드라이브 시간이 있다. 가끔은 그런 시간을 혼자 즐길 때도 있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남이 운전하는 차를 더 선호한다,

자가 운전일 때는 돌발 상황에 늘 긴장을 하니 예민한 성격이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도 불편을 감수하고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시골행 시외버스는 한산하다.

가장 선호하는 버스기사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은 나는 확 트인 차창 앞 유리 속으로 들어오는 환한 풍경에 눈길을 빼앗긴 채 한가히 MP3기기 속 음악 감상에 젖어든다.

버스는 시골 주차장마다 섰다 가기를 반복하며 손님들을 내리고 태운다.

마침내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할 때쯤 느닷없이 길가에서 웬 여자가 손을 들어 다급하게 차를 세운다. 분명 차가 정차하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싫은 내색 없이 차를 세우고 그녀를 태운다. 그러면서 차가 정차하면 안 되는 곳이라며 아는 사이인지 기사보다 한참은 더 연배가 돼 보이는 여자에게 반말로 책망을 한다. 급하게 달려와 버스를 타서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여자에게 다음부턴 정류장서 타기를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당부를 한다.

여자는 소란스레 웃으며 이번 차를 놓치면 집에 두 시간 넘게 걸어가야 한다며 기사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말을 한다. 오십 줄에 접어들어 보이는 그녀는 바짝 마른 작은 체구에 어딘지 궁벽한 옷차림과 삶의 신산함이 얼굴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그때 그녀가 차비를 내려고 바지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며 꺼내든 것은 일회용 투명비닐 봉지였다. 기사와 나는 동시에 그녀의 비닐봉지를 쳐다봤다. 흔한 손지갑 하나가 없는 그녀의 주변머리가 이상할 정도였다. 수 분후 버스기사는 간단한 소품정도는 넣고 다닐 수 있는 중지갑을 어저께 산 것 인데 자기도 들지 않았다며 그녀에게 선물로 건낸다.

만 오천원주고 샀다는 남자용 밤색 중지갑은 사실 여자가 들기엔 색도 그렇고 투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손지갑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모르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부모형제도 없이 떠돌이로 살았던 그녀는 늦은 나이 사내를 만나 아이를 낳았지만 얼마 후 사내는 떠났고, 홀로 시골에서 농사일품을 팔아 아이를 키운단다.

이웃동네 사람이라며 그녀가 내리고 난후 버스기사는 묻지도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버스 안 백미러를 보며 내게 말을 한다. 그러면서 지적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도 씩씩하게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단다.

백화점 유명 명품 지갑에 비길 수 없는 저 지갑은 분명 그녀의 생 속엔 행복한 명품일 것이다.

옛 성현 맹자는 남의 어려움, 위험, 고통, 불행 등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측은지심이라고 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무심한 세상 곳곳을 저 버스기사처럼 조용히 희망으로 물들이는 이들은 많다. 세상이 이처럼 환해지는 건 평범한 인생의 길목에서 나눌 줄 아는 이가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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