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서 만나는
세종대왕 초정행궁 이야기
한 권의 책에서 만나는
세종대왕 초정행궁 이야기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4.09.25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시문화재단,‘세종대왕 123일의 비밀’ 출간

한글창제·양로연·조세법 등 다양한 정책 펼쳐

향후 다큐·드라마·영화·뮤지컬 등 콘텐츠 개발

세종대왕이 충북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123일간 요양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친 내용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청주시문화재단은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안질 등 요양을 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친 내용을 실록 등 자료를 통해 조사 연구한 스토리북 ‘세종대왕 123일의 비밀’(사진)을 출간했다. 조사 연구는 조혁연 충북도문화재전문위원이 맡았고, 문화재단 변광섭 부장이 한 편의 스토리로 엮었다.

 

▶안질 질병 치료 위해 행궁 짓고 요양

세종이 안질, 소갈증 등으로 고생을 하자 대신들이 초정약수를 추천했으며, 세종은 1444년 2월 내섬시윤(지금의 비서관) 김흔지를 통해 초정리에 행궁을 짓게 하고 3월과 9월 두 차례 세종행차를 했다.

한양~영남대로~죽산~진천~초정 노선을 5일에 걸쳐 어가 행렬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 행차에는 세자(문종), 영흥대군(영웅대군), 안평대군도 동행했다. 특히 영흥대군은 당시 나이가 10살이며 8번째로 낳은 늦둥이였으며, 초정 행궁에서 한글 실험을 보고 배웠을 뿐만 아니라 훗날 ‘명황계감(明皇誡鑑)’이라는 중국 고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세종이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머무른 기간은 두 번에 걸쳐 123일간(1차 3월 2일부터 5월 2일까지, 2차 7월 20일부터 9월 21일까지)으로 초정 약수를 마시고 씻는 등 치료를 했다.

▶약수가 하늘로 치솟고, 옥이 발견되는 등 태평성대로 불려

세종이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요양하던 조선시대에 크고 깊은 우물이 있었으며 ‘백수(栢樹)’라는 나무가 있었다. 백수는 잣나무 또는 측백나무로 추측되지만 현재는 우물만 남아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우물이 돌로 쌓여 있는데 직경은 8척이고, 물은 푸른색이며, 아래로부터 위로 물방울이 크게 용출되었다고 기록했다. 약수는 마르지 않았으며 솟아오른 약수는 하천을 타고 길게 흘렀다고 기록했다.

초정행궁 기간 중 마을에서는 옥(玉)이 발견됐다. 세종은 옥이 발견된 곳을 특별 관리토록 지시했으며, 이 곳의 옥은 세종대왕이 박연 등을 통해 악기를 개발하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초정약수에서 물이 솟구쳐 오르고, 옥이 발견된 것을 보고 영의정 황희는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표현했다.

세종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초정을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 시절에는 신숙주, 최항, 황수신, 이사철, 이개 등 대신들이 동행했으며, 이후 세조도 초정리를 방문했다.

또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 일제시대 한글학자 최현배가 초정을 방문하는 등 많은 대신들과 학자들이 잇따라 초정을 찾았다.

특히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이론을 완성한 한글학자 최현배는 1932년 8월 초정약수를 방문한 뒤 동아일보 지면에 ‘한글순례, 청주에서’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세숫대야에 약수를 부어 두 눈을 씻으니 세종대왕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느낌”이라며 “세종께서 병환이었지만 초정으로 오셔서 오직 훈민정음 제작에 몰두하셨다”고 표현했다.

이와함께 일제강점기에 충북선이 개통되고 내수역이 생기면서 여름에는 초정약수 관광단 모집행사와 기차할인 행사가 전개돼 매년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방문하는 등 관광명소가 됐다.

▶한글창제 마무리, 용비어천가, 조세법 시범도입 등 조선 르네상스 펼쳐

행궁을 짓고 123일간 머물면서 세종은 한글창제를 마무리하고 주민들에게 한글을 보급하는데 힘쓴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은 한글창제 반대파였던 최만리 등을 유치장에 하룻동안 가두도록 명령할 정도로 한글창제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또 1444년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고’의 샘이 초정리의 약수(우물)인 것으로 알려져 초정리의 약수와 자연환경이 세종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와함께 세종은 마을 주민들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하고, 노인들을 초청해 양로연을 베풀었으며 청주향교에 통감훈의, 성리군서, 집성소학 등 책 9권을 하사했다.

당시 중부지역에 가뭄이 계속되자 “청주목 백성들이 나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며 집집마다 벼 2섬을 무상으로 전달토록 했으며, 어가 행차 중 전답이 훼손된 농가에게는 쌀과 콩으로 보상토록 하는 등 어짊을 실천했다.

청주시문화재단 관계자는 “세종대왕 123일의 이야기 속에는 세종대왕의 어짊과 민본 중심의 사상, 문예부흥 등 다양한 콘텐츠가 담겨있다”며 “앞으로 드라마, 다큐, 영화, 뮤지컬, 공연물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특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