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국의 주말 영화로 짐 쉐리단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가 방영돼 늦은 밤까지 보았다. 제4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북아일랜드의 한 청년이 무고하게 IRA(아일랜드공화국군) 소행인 폭탄 테러 혐의로 입건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30년 징역형을 언도 받고 무려 징역 15년을 살다 무죄 선고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1975년 영국에서 발생한 ‘제리 콘론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로 아버지와 아들 간의 기나긴 오해와 화해 속에서 아들이 정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제리는 협박과 고문에 못이겨 허위 진술을 하면서 아버지까지 공범으로 몰려 감옥에 가게 된다. 이후 테러의 진범이 자백을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석방되지 못한다. 이에 변호사 가레스의 도움으로 무죄판결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 사건으로 책임을 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폭탄 테러를 한 사람도, 거짓 자백을 받아낸 검사도, 사실을 알고도 사실을 밝히지 않은 법무장관도 책임진 사람은 없다. 피해자만이 있을 뿐이다. 국가의 횡포로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고 한 가족과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 당한 것이다.   

이 영화 같은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사형과 징역형을 받았던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30~40년이 넘어서 재심을 통해 연달아 무죄 선고를 받고 있다.

김대중, 윤보선 전 대통령부터 소위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줄이어서 면죄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리 콘론 사건’과 같이 협박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고 정치와 이데올로기 논리, 그리고 정치적 판결로 사법살인을 하고 옥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죄가 선고됐지만 어느 누구도 사죄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고문을 하고 협박을 한 사람이나 정치판결을 한 사람은 국가의 그늘 속에 자신을 감추고 세상 탓으로 정의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해 억울함과 한을 풀 수 있지만 삼청교육대 피해자와 같이 힘없고 나약한 피해자들은 이러한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억울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억울한 사람이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죽으면 한이 된다고 한다. 국가는 그 억울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지막 보루이다.

국가가 그 억울함을 해결해주지 못할망정 억울함을 키우고 억울함을 알면서도 법과 제도 탓만 한다면 국민은 한을 품고 죽을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의 횡포는 피해자만 남을 뿐이다. 몇 개월째 사회를 안정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에 국가의 횡포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행여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바다 속에 침몰시킨다면 한을 품고 죽는 사람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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