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는 오늘날 일본의 발전상을 대표하는 일본 제일의 번화가다. 가히 일본을 말할 때 긴자를 모르면 일본을 안다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긴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리가 돼 있다. 그러나 긴자가 처음부터 도쿄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도쿄는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수도를 교토로부터 이전함으로써 비약적이고도 일본제일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근대화를 추구하던 일본 정부는 서양문물의 적극적인 흡수로 매우 빠른 속도로 도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도시발전과 함께 긴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1번지로서 그 번화함은 눈부실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긴자도 원래는 도쿄가 원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긴자는 도쿄뿐만 아이라, 일본 전국에서도 가장 번화가에 속하는 그야말로 한국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다. 전후 아무리 시부야, 신주쿠, 록뽕기가 번화하다 할지라도 그 명성과 번화함은 아직도 여전하다.

거품경제 붕괴 후 부동산 경기가 식었다 하나 긴자는 그래도 일본 제일의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가히 금싸라기 땅으로 우리로 치면 서울의 강남에 비견될만한 곳이다.

전국의 각 지역에도 ‘OO긴자’라는 상호의 상점이 있고 도쿄의 긴자가 본점이라고 선전되나 실은 교토(京都)가 긴자의 원조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긴자란 바로 은화(銀貨)를 만드는 주조소(鑄造所)를 의미하는 말로 오늘날의 돈 찍어내는 조폐창과 같다.

현재의 도쿄 긴자는 에도 때부터 은화를 제조하던 곳으로 메이지 유신 후 가로등이 들어오고 벽돌집이 생기는 등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번화가로 발전한 거리가 돼 일본 전국에서 가장 토지가 비싼 곳이 됐다.

그러나 일본 최초로 은화를 주조하던 긴자(銀座)는 아쉽게도 도쿄가 아니고, 교토 후시미(伏見)에 있었다.  ‘긴자’라는 지명의 시초는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1598년 교토의 후시미에 은화 주조소를 두고 1601년 일본 전국에서 사용되는 은의 품위를 통일해서 정은(丁銀), 소립은(小粒銀), 두판은(豆板銀)이라는 세 종류의 은화를 여기서 만들어 보급했던 것이다. 바로 이곳이 최초의 긴자였던 것이다.

1606년에는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슴뿌(駿府)와 오오사카(大坂), 나가사키(長崎) 등에도 긴자를 두었다가 1612년에 슴뿌의 긴자를 에도로 옮기게 됨으로서 도쿄에 비로소 긴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결국 슴뿌에서 옮겨 간 긴자가 오늘날 도쿄 긴자의 모태가 된 것이다.

한 동안 일본 여러 곳에 지정된 긴자에서 만들어지던 은화는 1800년 은화주조에 관련한 각 지역에서의 잇따른 부정사건으로 인해 한 곳으로 통폐합되기에 이른다. 이에 수도인 에도(토쿄)에 위치해 정부 관리가 비교적 쉬운 에도의 긴자 한 곳만 남겨두고 모두 철폐하기에 이르니 나머지 지역에서는 자연적으로 긴자라는 지명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결국 에도의 긴자에서만 은화가 만들어지고 그곳의 지역명이 유명해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원조는 역시 교토의 후시미가 되는 것이다.

긴자라는 지명조차도 그 뿌리는 옛 수도 교토에서 찾아야 됨을 의미하니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 교토라는 말이 가히 실감이 난다. 평생 한번쯤은 쿄토에 살아보고 싶다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장팔현 충북대 정외과 교수·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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