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칼럼]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꽃인가? 함정인가?
[김준환칼럼]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꽃인가? 함정인가?
  • 충청매일
  • 승인 2014.09.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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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민주주의는 현재까지 발전된 정치제도 중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왕정통치나 전제정치, 독재정치에 비해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모아 지도자를 선출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 정치체제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다수결이다. 다수결의 원리는 선거의 원칙으로 적용되며, 선거 이외에도 우리를 둘러싼 많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다수결은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다수결 원리가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토론과 언론의 자유 보장’, ‘소수자 권리 존중’ 등의 조건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단지 숫자가 많다고 다수결의 정당성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결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첫번째 함정은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학교 시험문제에서 정답은 3번인데, 대다수의 학생들이 4번을 찍고 답안지를 제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답은 누가 뭐래도 3번이다. 아무리 많은 학생들이 답이 4번 아니냐고 항의해도 정답은 바뀔 수 없다. 아무리 99%의 사람들이 옳다고, 또는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고 선택했어도, 정답을 바꿀 수는 없다.

둘째, 소수의 피해에 대한 공리주의적 묵인이다. 즉,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아하므로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결과적으로 소수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보상을 해준다.

세번째 함정은 집단 이해관계가 많고 복잡할수록 다수결의 효용이 낮아진다는 문제이다. 콩도르세의 역설은 다수결을 통한 집단의 결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컨대 A, B, C 3명의 후보가 있을때 A를 B보다 선호하고(A>B), B를 C보다 선호할 경우(B>C), A를 C보다 좋아해야 한다(A>C). 하지만 최다득표제 하에서는 이에 위배되는 결과(C>A)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콩도르세의 역설은 어떤 순서에 따라 투표하는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수결의 결과를 투표당사자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이것이다. 누구하나 재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중의 선택일 경우 그 책임성은 매우 심각해진다. 충분한 대화와 타협, 조정과 설득의 과정을 생략한 다수결은 무능력의 표현이다.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수결의 함정에 빠진 정치권이 있다 바로 중부권의 충남과 충북 광역의회다. 다수를 차지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모두 독식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운영의 기본이 무시된 일방통행이었다. 소수당이 이런 저런 요구를 하며 반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원 구성을 끝냈다. 다수결의 원리를 빌미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반면에 비슷한 처지의 대전시의회는 여야가 서로 존중하며 타협을 이뤄냈고, 유성구의회나 청주시의회도 대화와 양보로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다수결의 원리는 최대한의 대화와 조정과정, 소수자에 대한 설득과 존중을 거친 연후에 최소한으로, 그리고 최후에 사용될 때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있다. 광역의회 의원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올바른 소통의 방식,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제출하는 것, 그리고 반대의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장 우선시 하는 것, 상대에 대한 불필요한 상상과 음모론적인 관점을 버리는 것, 바로 자신의 생각과 욕망이 투영된 것일 수 있음을 자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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