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일본, 일본인

작금의 일본정치가 우향우 일변도로 나감에 있어 우리는 국내정치의 혼란상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나, 심히 우려해서 볼 일이다.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막아내야 할 중심 국가는 오로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년 8월15일은 우리에게는 ‘독립의 날’이요 ‘해방의 날’이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패전의 날’이자 ‘종전의 날’이다. 일본인들은 어느새 ‘패전’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힘의 균등한 상태에서 전쟁을 끝 마쳤다는 ‘종전(終戰)’이란 말을 더 선호하고 있다. 엄연한 역사왜곡을 의미하는 단어 사용이다.

이처럼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일본이 이제는 마음속의 쓰라림과 울분을 달래며 세계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에 끝없는 미소를 보내면서 착착 그들의 꿈을 이루어 왔고 이제는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정치대국화’도 곧 이뤄질 것 같은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장한 각오로 2기 내각이 출범됐으니 말이다. 가히 2차 세계대전의 토오죠 내각을 떠올림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고이즈미 총리가 우익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1기 내각을 무사히 마치고 9월21일 2차 내각을 발족시킴으로서 군사대국화를 넘어 이제는 정치대국화로 매진하는 형상이 됐다. 별 이상이 없는 한 2006년 9월까지는 일본이 우향우를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할 것이며 이미 실질적으로 끝마친 군사대국화의 공고화와 정치대국화만이 남았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일본 내의 기득권층으로서 일제 때의 각료나 정치인이었고 조선, 대만에 파견된 총독부의 고위 관리였으며, 메이지 때는 혁명군 사무라이였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이묘(大名)이었고 임진왜란 시는 호소카와(細川)란 적장이었고 쿠로다(黑田)였었고 카토오(加藤)였고, 모리(森)였던 것이다.

고이즈미도 알고 보면 양복 입은 사무라이에 다름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실은 옷과 명칭만 바뀌었을 뿐 옛날의 기득권층은 지금도 기득권층이요, 피지배층은 그대로 피지배층으로서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신분제는 이처럼 민주와 자유라는 제도 하에서도 그 큰 줄기의 흐름에는 기묘하게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과연 일본에는 민주자유국가로서 인도처럼 카스트제도는 없지만, 300만명에 이르는 ‘부락민(部落民)’은 지금도 일본인의 차별 속에서 ‘천민’이란 낙인이 찍힌 ‘보이지 않는 신분제’의 피해자들이다.

시대에 따라 다이묘니 각료니 장관이니 국회의원으로 불리지만, 실은 ‘좀마게-(상투)’만 떼어내고 양복 입고 세계인과 함께 숨쉬는 현대인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내에는 칼을 품은 사무라이로 필자에게는 비친다. 루스·베네딕트가 얘기 했듯이 일본인들은 “국화와 칼”로 분석함이 올바를 듯하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는 그들의 웃음 속에 감춰진 비수를 우리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게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보고 있는 중이다.

‘세계평화’라는 정치철학 대신에 ‘일본패권주의’밖에 없는 일본이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은 경제대국화와 군사대국화의 완성에 이어 정치대국화도 이루는 것으로 이는 곧 튼튼한 삼각편대를 이룸이니, 장차 한반도와 인류의 대재앙이 될 것은 불문가지이다.

일본의 정치대국화만이라도 우리는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경제, 군사대국화는 일본의 내재적 힘으로 이루는 것이기에 우리가 막을 수 없었지만, 정치대국화만은 외재적 요인으로서 우리가 최대한 노력하고 적절한 전략을 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장팔현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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