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3월. 일본은 역사 교과서를 새로 선정하면서 이해 관계에 있는 이웃 국가들을 자극했다.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이 역사교과서는 검정 때부터 주위 여러 나라들로부터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를 무시하고 일본 문부성은 이 역사교과서를 승인해버렸다.

일본 문부성이 승인한 이 역사 교과서는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으로 부르면서 침략전쟁을 아시아를 위한 해방 전쟁이라고 미화하면서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미화하거나 없었던 것처럼 묵살하고 있다.

처음 이 역사 교과서에 대한 우리측의 대응은 강경했다. 정부는 주일대사관을 소환하는 등 일본에 우리측의 주장을 전달했고, 각종 시민단체들은 서명운동을, 네티즌은 사이버 시위를 벌임으로써 일본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2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 교과서 사건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머릿속에서 역사 왜곡 교과서 사건은 한구석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인을 ‘냄비 근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하나의 이슈가 떠오르면 금방 열을 내고 달려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마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완전히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사건을 통해 보여지는 한국인들의 모습도 그런 ‘냄비 근성’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모두가 격분하며 강력한 대응을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찌개를 끓이는 전통적인 도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냄비가 아닌, 흙으로 구운 뚝배기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찌개를 한가득 품은 뚝배기는 상에 올려진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특유의 은근함으로 찌개의 따뜻함을 유지시켜준다.온기는 끈질기게 남아,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냄비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번 화끈하게 달아올랐다가 금세 온기가 사그라지는 냄비보다는, 은근하게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하는 뚝배기의 속성을 닮아 가는 것. 이 시대에 한국인들이 역사교과서 사건과 같은 국제 문제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김누리 / 충북사대부속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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