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산으로 소풍…’ 청주TP 스토리텔링북 발간
송절·외북·화계 등 3곳 토박이 47명 구술채록

사진·지도 등 수록…1940∼1980년대 변화 한눈에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으로 사라지는 흥덕구 3개 마을의 근 ·현대 변화상을 문화사적 시각에서 조명한 스토리텔링북이 발간됐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시행자인 ㈜청주테크노폴리스의 지원을 받아 공단 조성으로 멸실되는 강서2동 외북, 화계, 송절 3개 마을의 역사, 생활사, 이야기를 아카이브화하기 위해 마을 토박이 47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구술자료집 ‘월명산으로 소풍, 까치내로 천렵’을 제작했다.

이번 사업에서 송절마을 이상훈(82·농업)씨 등 토박이들은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개 마을은 물론 청주공단과 청주지역의 근대역사, 생활사, 민속 등 지역사 전반에 걸쳐 구술과 회상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증언했다.

이 구술사업은 역사, 민속, 기록사진 등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이 지난 4월부터 3개월간 토박이 생애사 구술과 함께 △길 △계 △나루와 주막 △통혼 △근교농업 △세시와 놀이 △서당과 학교 △청주공단 △종교 △신앙 △역사와 변천 △지리 △지명 △성씨와 유산 △전설과 소리 등 다양한 세부 주제에 걸쳐 체계적인 사료 수집 작업을 벌였다.

또 일제강점기 청주지도와 내곡초등학교 1940년대말 학교사료, 1979년 청주시 항공사진 등 과거 기록사진 200점을 새롭게 발굴해 이 구술자료집에 담아 시각적이고 입체적인 스토리텔링북을 선보였다.

특히 △청주우시장에서 수원장, 상주장을 오가던 소몰이꾼 △1960년대 추석 때면 마을마다 청년들이 행하던 농촌 마을연극 △까치내 원평동에서 무심천 재나골에서 까치내 원평동 작천보에 걸쳐 있었던 봇재주막, 맘보주막 등 4개 주막이 구술을 통해 발굴됐다.

미호천과 무심천 합수머리의 작천보에 있었던 나루와 보트장, 미루나무숲은 마을 주민은 물론 청주 시민, 근로자들의 여가 생활과 주말 쉼터로 크게 각광을 받았으며, 1970년대 본격적인 새마을운동 전개와 함께 기계화 영농, 지붕개량, 마을 길 넓히기, 마을별 근교농업(송절 열무 등)으로 가계소득 증가와 함께 마을이 크게 변천한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서 근대시기에 이르는 다양한 청주의 지역사와 민속 사료가 발굴되기도 했다.

일제 패망에 대한 예언과 벽서이야기가 강서지역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회자되었던 사실(8·15 해방 직전) △일제강점기 충북도청이 중앙공원에서 청주농고(내덕동)로 이전할 뻔한 이야기(1937년) △조선시대 사형이 집행되했던 효수대가 무심천 서문교 부근에 존재했던 이야기 △‘이인좌의 난’때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신천영이 상봉재 바위에 기와집 문양을 암각하게 되었던 전설(조선시대)이 채록됐다.

마을지의 형태도 갖춘 이 책에는 정월대보름 중부지방 마을과 집에서 행해지고 있는 전통민속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터주 모시기 등과 함께 마을별로 있었던 연반계, 동계, 반계, 여성들이 하던 돈 친목계, 스텐계, 벽시계 계, 마을별 풍물단, 청년 주축의 방범대, 마을연극단, 수리조합 조직 등 마을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마을조직이 조사됐다.

또 강서 일대에서 한학을 공부한 선비들의 시사회(詩社會)였던 문우계의 내력과 상신마을 진주강씨 집안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청주의 레시피 ‘반찬등속’의 유래와 내용, 농사철 풍장(풍물)과 함께 연주되었던 호드기 재현이야기와 만드는 법 등 무형 문화유산이 다양하게 발굴됐다.

이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어온 경주김씨, 진주강씨, 경주이씨, 보성오씨의 입향과 내력을 비롯 지명, 문화재 그리고 짐재와 북통혈에 얽힌 전설, 모찌는 소리와 방축소리 등 노동요가 함께 정리되어 있다.

아울러 근대화 시기 전국 8개 도시에 지방공단 개발정책이 수립되고 1969년부터 청주공업단지가 조성을 시작하며 인근의 정사간, 좌기 마을들이 이주하게 됐고 1972년 9월 박정희 대통령이 이 곳을 방문하여 주민 소득증대를 강조한 사실과 청주공단 대표 기업인 대농과 럭키청주공장의 기업사등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전성기에 근로자 7천명이 근무할 정도였던 충북 최대의 공장이었으나 2000년대초 부도로 문을 닫은 대농 30년사가 당시 대농 구내 사진관을 운영한 강갑준(81)씨를 통해 채록됐다. 생산현장과 공장내 양백여상을 오가며 주경야독을 했던 10~20대 여성 근로자들의 생활상은 물론 면회소 건물에 있던 사진관, 교복맞춤 의상실 등도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 청주목에서 속했던 강서2동이 일제강점기(1914년)에는 청주군으로, 미 군정기(1946)에 청원군으로 분리되고, 도시 확장과 함께 1983년 다시 청주시로 편입되게된 과정과 함께, 지금부터 250여년전 편찬된 ‘여지도서’(1757~1765)에 모내기 농법의 보급으로 전국에 축조되었던 저수지 가운데 쌍평제(雙坪堤)는 지금의 신정방죽(송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지난 1월 성안길 스토리텔링북 ‘청주약국 앞 홍문당, 홍문당 옆 청주뻬까리’를 발간한 문화산업진흥재단은 이 번 외북·화계·송절 마을 ‘월명산으로 소풍, 까치내로 천렵’에 이어 지속적인 구술아카이브 사업을 전개해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청주 지역사 구축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 개발의 문화원형으로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043-2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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