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 한 해가 저문다. 한 해 동안의 일들을 사자성어로 정리해 보면 우왕좌왕(右往左往)했던 한 해였다. 이는 지식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순위 1번으로 선정된 단어이다.

선정된 배경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정치·외교·경제·사회 전 분야에 걸쳐 혼선이 거듭됐고, 대형사고 발생으로 각 분야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2위로는 점입가경 (漸入佳境), 3위로는 이전투구(泥田鬪狗), 4위로는 지리멸렬(支離滅裂), 5위로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 선정됐다.

참고로 재작년에는 1위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작년에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강한 표현들이다.

혼선이 거듭된 계미년 한 해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설문조사에서 기분 좋은 일(11.8%)로 여겼으며, 사실 대통령 취임 당시 국정수행 지지도는 84%를 넘었다. 그러던 것이 1년 사이에 국정 수행 지지도가 33.3%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취임 6개월 후에 평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80%, 김대중 전 대통령의 60%대의 지지율과도 대조적이다.

기분 좋게 시작한 참여 정부는 처음과는 다른 정책의 혼선으로 인해 오락가락하고 말았다. 위도 방폐장 건립과 새만금 사업, 경부고속철과 외곽순환도로 개통 등 대부분이 국정의 기조를 잃고 흔들리면서 표류했고 결과적으로 국가적 손실의 폭은 커져만 갔다.

갈수록 태산으로 사회적으로는 신용불량자 수가 4사람 중 한 사람으로 늘어나고 다음 세대를 책임질 청년실업자수가 전체 실업률의 반을 넘고 있다. 이로 인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사업가들은 ‘못해 먹겠다’고 차라리 중국으로, 외국으로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볼꼴 사납게 으르렁대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로 인해 현 정권의 도덕성은 이미 땅에 떨어졌는데도, 500억 이상의 불법정치자금으로 만신창이가 된 패자를 나무라고 있다.

더구나 패자보다 작은 10분의 일의 액수를 상한선으로 제시하면서 면죄부를 받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 이 꼴인 데도 국민들이 현 정권을 향해 ‘자갈밭을 가는 소처럼 부지런하고, 인내심 강하다(石田耕牛)’는 표현으로 칭찬해주길 기대할 수는 없다.

연중 국회가 문을 연 날이 형식상 287일로서 연중무휴로 일한 셈이긴 하지만 내용상 그동안 한 일을 따져보면 열심히 일한 흔적은 없다. 그런 가운데 국제투명성기구가 10월중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대상국 133개국 가운데 50위로 1년 동안에 10단계나 추락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이 지리멸렬(支離滅裂)하게 된 원인에는 현 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

새해에는 국정 혼란 없어야

당초에 확고했던 신념과 추진력이 약화되면서 현 정권에 대한 회의와 갈등을 증폭시켜 여·야간의 정쟁과 노·사간의 파업·투쟁, 언론과의 소모전, 사법부의 갈등, 세대간의 대립, 이념의 갈등, 안보의 불확실성, 이라크파병, 지방분권 특별법 통과의 불투명성 등등으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돼버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은 하루빨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잡다한 상황에 휘둘려 말로서 승부하고 인기에 영합하려는 ‘우왕좌왕’보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묵묵히 실천하고 국민의 질타를 받는 쪽이 훨씬 대통령다울 것 같다.

대통령 된 지 1년이 넘은 지금, 아직도 ‘노빠당(노무현 오빠당)’의 총수로서 낭만적 추억에 잠겨 있고자 한다면 정쟁은 계속되고, 국정은 표류할 것이며, 경제위기는 다시 오고 민생이 약화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새해에는 서로 양보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네 덕, 내 탓이오’ 정신이 모두의 마음에 자리잡도록 뜻을 모아보자.

이정길 / 주성대 전임연구원·문학박사 (jkrhee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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