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나는 언제인가 불교신행에 관한 책자를 읽고 너무도 감명이 깊었기에 그 내용을 써보고자 합니다.

실로 간절히 정성을 다해 뉘우치면 녹아내리지 않을 업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참회를 하지 않고 한탄만 합니다. 그리고 또 말합니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자신을 관찰해 보십시오. 지금 이 생애만이라도 되돌아보십시오. 평생토록 몸과 말과 생각으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공연히 드러누워 있다가 단지 싫다는 감정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현생(現生)에 짓는 죄만 하여도 가히 헤아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전생(前生)의 죄업까지를 더하여 보십시오. 그야말로 ‘한량없는 죄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 죄업을 녹여 없앨 수 있는가? 오직 스스로 참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라도 합장하고 정성을 다해 참회하게 되면 업장은 구름 걷히듯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참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잘못했습니다.’ 바로 이 한 마디 속에 모든 업장을 녹이는 참회의 핵심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중국 양나라 때 양주 땅에 살았던 정백린은 평소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부르며 참회하였습니다. 어느 해 여름 전쟁이 일어나 적병이 양주 땅으로 쳐들어오게 되자 정백린은 집안에 모신 관세음보살님께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날 밤 정백린의 꿈에 나타난 관세음보살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가족 17명중 16명은 무사히 피할 수 있지만 한 사람만은 안 된다.’,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대이니라.’, , ‘그대는 과거 전생에 어떤 사람을 칼로 26번이나 베어 죽인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이 지금 대장군 왕마자가 되어 양주 땅으로 쳐들어오고 있다. 이제 그대는 전생의 과보로 왕마자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꿈은 너무나 생생하였습니다. 정백린은 가족을 모두 피난시킨 다음 집안의 관세음보살 앞에 앉아 정성을 다해 염불했습니다. 5일이 지나자 칼을 뽑아든 장군 한 사람이 대문을 박차고 집안으로 들어섰고 정백린은 담담한 자세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왕마자에게 정백린은 관세음보살께서 현몽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왕마자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가 전생에 당신을 죽였으니 오늘 내가 당신의 손에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의 원결은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풀어버리고 다시는 서로 원수가 되지 맙시다.’ 그 말을 들은 왕마자는 가슴이 확 뚫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소이다. 오늘로써 전생의 원한을 모두 풀고 앞으로는 세세생생 다정한 벗이 됩시다.’ 왕마자는 정백린의 몸을 칼등으로 가볍게 26차례 내리친 다음 부하들을 이끌고 떠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장백린의 자세야 말로 진참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도 장백린의 자세를 마음에 새겨 지금의 업장과 다가오는 업장들을 녹여야 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지난날의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하옵나이다.’ 이렇게 잘못을 참회하며 업장을 소멸시키다 보면 차츰 마음이 고요해져서 괴로움이 다가와도 휩싸이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죄업에 대한 과보를 받고 받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릇된 업은 저절로 풀리면서 새로운 선업을 이루고 악연은 좋은 인연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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