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는 틈 나는 대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그 때마다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었다. 평상시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의 관람객이 많다는 사실과 그 관람객의 다수가 노인이라는 점이었다.

커다란 공원 내에 위치한 한 미술관은 서울의 탑골공원이나 청주의 중앙공원을 연상시켜 쉽게 야외에 있는 많은 노인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밖에서 만날 수 없었던 노인을 오히려 미술관 내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모습이 아닌 중년이 조금 지난 듯이 보이는 노신사와 마담의 모습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작품 내용을 일일이 적어가며 숨겨진 예술성을 놓칠세라 진지하게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은 그 모습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작품이었다.

한 번은 백발의 한 할머니가 베레모를 쓰고 앞의 애교머리에는 연보라빛 염색을 살짝하고 있어 그 할머니를 감상하느라 넋이 나간 적이 있었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어야지’라면서.

백발, 주름진 얼굴, 굼뜬 행동이 노인을 대표하는 부정적 상징어이지만 어느 것 하나 그 할머니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순간 우리나라의 백발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일본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고급문화를 향유할 때 우리의 할머니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 정신대 징발을 피하려 조혼을 했고, 할아버지들은 징병, 징용, 보국대의 이름으로 청춘을 암울하게 보내야만 했다.

같은 시기의 일본노인은 2차대전에 공헌한 세대, 또는 공업선진화의 역군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모든 노인이 무갹출 연금의 수혜자가 된 지 오래됐건만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원의 무료 급식소 앞에서 줄을 서서 한끼 식사를 해결해야만 하니 한·일간 노인복지의 격차란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50% 이상이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현재의 노인세대는 젊은 시절 역시 국가와 가족을 위해 일해 온 이들로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장 큰 과제였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취미와 특기를 살리며 여유있는 삶을 살아온 세대가 아니다. 지금 노년이 된 그들이 아직도 빈곤해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할 만큼 큰 그릇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도 이들을 위해 일본정부가 하는 것처럼 고난의 시절을 보상해 줄 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경로당에서조차도 한겨울 연료비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다. 다행히 대단위 아파트 내의 경로당은 전 세대가 공동 분담해 도와주고 있다지만 그렇지 못한 경로당에서는 난방이 되질 않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충북 공동모금회가 지난 5년간 CJB와 공동 주관해 온 경로당 유류보내기 기획사업으로 그동안 버텨왔건만 그것도 올해로 막을 내리니 앞으로가 캄캄할 노릇이다. 일본의 노인은 미술관과 박물관 안에서 우아하게 작품과 유물을 감상하고 있는데 우리의 어르신들은 아직도 추위와 끼니 걱정하며 갈 곳 없어 해야 하니 노인복지를 연구하는 교수로서 서글프기 한이 없다. 올 겨울 추위가 어서 가길 고대하는 마음이다.

한규량 / 청주과학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