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서서히 저문다. 올해라고 해야 5일밖에 남지 않았다. 일년을 마감하는 각자의 감회는 하나 같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만족스레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되돌아 보는 일조차 역겨워 굳이 잊으려 애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쯤 착잡한 감회를 갖기 마련인 게 한결 같은 심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맘때쯤 특히 술을 벗삼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려니 자연 가까운 친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마련이어서 이런 모임을 우리는 ‘송년회’ 혹은 ‘망년회’라 부르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즐기거나 진땀을 흘린다.

한 해의 회고 자세 엄숙해야

이러한 세시풍속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어 그것들이 우리의 것에 많은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1천400여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년망(年忘)’ 이라 해서 세모에 친지들이 회동, 음주 가무를 즐겼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당나라 시절 시인 원결(元結)의 시와 저서 ‘원차산집(元次山集)에도 나오고 그 이전 다른 서책들에서도 망년에 관계되는 풍속이 나온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습들은 일본식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잇기노미(一氣飮)’ ‘완샷(원샷)’이라 외치며 연거푸 폭탄주를 마셔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다 인사불성이 돼 나가떨어져야 직성이 풀려 끝이 나는 것이다.

이런 내력을 가진 한해 결산의 행사를 우리는 ‘망년회’라 부르기보다는 ‘송년회(送年會)’ 쯤으로 부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인 듯 하다.

송년회를 갖는 자세부터 바뀌어야 하겠다는 것도 뜻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만취되다보니 정신을 잃고 멱살을 움켜잡고 남과 다투는가 하면, 두세 곳을 헤매는 2·3차 노래방 들르기, 욕설이나 음담패설을 읊어대는 일본말 ‘와이단(猥談)’ 등등의 행태는 어떤 말로도 바람직스럽거나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퍼마시고 기억을 지우려 발버둥을 친다고, 내가 만들고 밟아 온 내력이 지워질 리 없고, 망각될 리 또한 없다. 차라리 한 해 모든 일들을 새록새록 떠올려 되씹어 반추하고 잘못된 일은 반성해 되풀이하지 않을 결의를 다지는 ‘억년회(憶年會)’ ‘송년회’ ‘연말회’ ‘세모회’가 돼야 하지 않을 가 싶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의 마지막 시점에서 우리가 꼭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자신의 행적을 회고해 좋은 것에 자족하고, 나쁜 것을 반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아가서, 나의 이웃, 친지, 동료, 선후배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고 내일은 오늘의 연장이기에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보다 나은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기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自, 他 함께 살피는 '송년'이길

특히 연말 연시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아 살피는 일은 더더욱 긴요한 과제라 느껴야 한다. 한잔 술, 몇 장의 지폐를 아껴 싸늘한 엄동에 한기를 느끼는 이웃에 온정을 베푸는 일을 모두가 솔선하고 수범해야 할 과제이다.

선진 사회로의 진입이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제는 이런 이웃에 대한 배려나 온정, 사랑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덕목이다. 모든 복지시설에 찾는 발길이 끊겼다는 전언이다. 갈수록 얄팍해지는 세태가 저절로 치유될 수 없다.

각자가 가까운 이웃을 살피는 작은 배려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일들이다. 올 송년회는 각자가 경건한 마음으로 한 해를 돌이켜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주변에 추위에 떠는 ‘불우이웃’은 없는지 보살피는 경건한 자세로 맞고 보냈으면 하는 소망이다.

/ 청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birdie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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