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인류의 구세주는 마굿간 말구유에 태어났다. 낮고 천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탄생이요, 온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다. 평생을 머리 둘 곳도 없이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33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셨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바다의 파도를 잔잔케 하고, 모든 질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내신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비참한 인생을 살다 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 것은 지극히 작은 자를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려놓는 사죄의 은총과 구원과 영생의 축복, 천국의 행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의 자기비하(自己卑下)의 삶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세계도처에서 테러의 위협이 끊이지를 않고, 아직도 매일 5만명 가량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회의 구석구석이 고통과 절망으로 울부짖고 있는데도 정치판은 짜증나는 뉴스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민들은 총체적 위기에 몸부림치는데도 어둡고 긴 터널을 언제 빠져 나올지 아득하기만 하다. 

다만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많다는 사실은 같은 땅에 살아가는 한 국민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절).

크리스마스는 전세계적인 명절이다. 흥청망청 즐기라는 명절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웃들과 절망과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돼주고, 그들을 따뜻하게 도와줘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라는 명절이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이다.

꼭 크리스마스 때만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웃을 돌아보라는 뜻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이 항상 계속돼야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본래의 정신인 것이다. 성탄절 때가 되면 고아원·양로원에 가서 라면박스를 쌓아놓고 사진을 찍고 매스컴에 이름이나 내는 성탄절이 돼서는 안되겠다.

21세기의 초고속으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구촌은 가장 귀중한 일들을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를 지탱해 가는 정신적인 유산이, 윤리와 도덕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가치관의 대혼란이 옴으로써, 장차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징조가 보인다. 인류의 공생 공존, 평등과 자유와 평화를 위한 노력은 점점 그 위력을 잃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후세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유엔마저도 반대하는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놓고 쩔쩔매고 있는 부시 대통령을 보라. 예수께서는 하나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목숨이 얼마나 많이 희생 당했는가?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죽음의 희생도 끝나지 않았다.

아기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들, 가난하고 굶주리고 소외당한 사람들, 질병으로 고통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성탄절이 흥청망청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구촌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총체적인 위기라고들 한다. 위기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기회라는 뜻도 있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희망을 심어 생명을 살리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소외당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장광섭 / 성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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