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까지 우민젊은기획자 전시 ‘길들여지는 밤’
작가 10인, 삶 속‘밤’의 정서 심리학적으로 풀어내

▲ 임지희 作(왼쪽)·황지윤 作.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문병란의 ‘희망가’ 중)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인생의 시련이나 절망의 한가운데 서있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나 고통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최근 세월호 사건으로 생채기에 생채기를 더하는 비보만 쏟아지는 가운데 아픔과 고통, 공포, 불안 등 어두운 감정들이 언젠가는 각자의 삶 안에서 수용돼 길들여질 수 있기를 새로운 희망을 쏜다.

인생의 시련이나 절망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을 직면하였을 때 심리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밤’으로 상징하며 작가의 작품 안에 낮게 깔린 ‘밤’의 정서들을 심리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해 풀어낸다.

오는 28일까지 우민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2014 우민젊은기획자 전시 ‘길들여지는 밤’. 이번 전시는 우민아트센터가 젊은 기획자의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우민젊은기획자 'Wumin Young Curator' 를 선정해 기획 진행됐다.

우민젊은기획자로 선정된 조지현 아트스페이스 이드 대표는 지하창고전 및 개관전(2010)을 시작으로 잊혀진 기억전(2011), 중앙동 콜라보레이션 기획전(2013)을 기획했고, 스토리아트레지던스 지역특성화 레지던스 사업 선정(2012),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리그 3기를 수료(2013)했다.

전시는 감정 단계를 설정하고, 서로 다른 층위의 감정으로 투영된 10명의 작가들 성왕현, 송유림, 양유연, 이유나+오헬리앙 뒤센, 임지희, 정해련, 황지윤, KKHH 작품들로 ‘밤’의 정서를 바라보며 결코 익숙해지기 쉽지 않을 인생의 ‘밤’들에 길들여질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안겨준다.

성왕현 작가의 작품 안에는 죽은 사람에게 수의를 씌우듯 자본의 논리에 의해 철거되어 방수포로 뒤덮여진 추억의 장소들이 넓고 파란 흐름으로 일렁인다. 그는 이러한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린 슬픔을 ‘멜랑콜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애도와 달리 ‘멜랑콜리’는 상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충격의 상태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감정적 상실을 거부한다. 이는 작품 ‘섬’에서 거대한 물결사이로 고립된 한두 채의 집, 단순한 컬러, 심한 대비 등의 조형 원리 아래 올곧이 드러난다.

송유림 작가는 다분히 우회적인 암시를 통해 정적이며 감성적인 어조로 타인과의 갈등, 불안과 같은 밤의 감정들을 다룬다. 특히 ‘Family Album’, ‘Words of Family’는 지금까지 작가가 집중해왔던 가족이나 유년시절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이미지를 통해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는 함축적이고 모호한, 분명하게 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켜켜이 올려진 색색의 실들로 차분하고 아름답게 화면 안에 수놓는다.

양유연 작가는 전체 색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함께 작가 자신의 삶 연대기에 나타난 개인적 표상일 수도 있는 인물을 화면에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이 품고 있는 상처, 우울, 불안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작가의 어두운 정서는 장지에 머금은 채색만큼이나 넌지시 제시될 뿐이지 곧장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 작가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들을 혐오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여전히 상처받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회피하는 모습으로 화면 속 인물들을 자신에게 투사시킨다.

이유나+오헬리앙 뒤센은 영상과 조형 설치 작업을 같이 진행하는데, 버려졌던 하나의 오브제를 자르고 벗겨냄으로써 나타나는 형태와 재료 본연의 표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구불구불한 검은색 띠와 같이 공간 안을 그리고 있는 그들의 작업은 이번 전시 주제를 망라하는 ‘밤’ 이미지의 함축이며, 각 단계의 감정 층위를 아우르는 감정 변곡선의 알레고리로 의도하지 않아도 변화하는 감정의 속성을 그들의 일상에서 발견된 재료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공간에 따라 설치를 달리함으로써 감정의 속살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임지희의 작품 앞에 서면 복잡하게 엉켜진 감정들이 읽혀진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별일 아니다’ 시리즈는 감상자를 단순히 감상하게 하는 것에서 끝나게 하는 게 아니라 생경한 듯 익숙한 내면의 어두운 자아와 대면하게 만든다.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무거운 색감과 침울한 분위기는 이러한 감정이입을 잠시 주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복잡하지 않게 삶의 여러 우여곡절을 넘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으로 자신의 짙고도 짙었을 사적인 이야기들을 감상자 앞에 망설임 없이 툭 내려놓을 수 있는 내공과 여유가 공존한다.

정해련 작가는 익숙하면서도 일상에서 지나쳐 버리기 쉬운 공간을 발견하고 머리에 실핀을 꽂듯 공간을 주목시킨다. 작품은 전시장에 공간적·정서적 맥락을 조금 비켜서서 자리 잡는데 이는 작품이 가진 본연의 특질 즉 스테인리스의 차가운 촉각적 온도에도 불구하고 감상자의 눈에 거스르지도 너무 외떨어지지도 않게 위치시킨다. 관습화된 사회적 기준에 들어맞기를 욕망하는 사회에 대해 작가는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유지하며 전시가 말하는 정서적 화두에서조차 한걸음 물러서서 장소적 맥락에 빗대어 함축된 언어로서 시각화한다.

황지윤 작가는 몽환적인 느낌의 자연 풍경들을 화면에 담는다. 눈보다 마음에 익을 법한 시각적 잔상의 여운을 남기는 그의 풍경화는 공포나 불안, 유희 같은 심리적 자극을 일으키는 개체화된 형상들의 결과물로서 이중 구조의 형태를 띤다. 이는 감상자가 화면 안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 사이 어두운 심리적 풍경으로 소환하는 장치로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내면의 심리를 이발소 그림의 형식적 전형성에 내재화된 방식으로 덧입혀버리는 작가의 세련된 감정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KKHH(강지윤+장근희)의 ‘적당한 사이’에서 ‘적당하다’는 말은 정도나 양이 알맞다는 뜻과 동시에 썩 만족스럽지 않지만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는 애매한 범위의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관계 속성에 주목해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적당함’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점을 포착하는데 작가는 주제에 대한 감정적 해석을 되도록 배제한 채, 실험이라는 객관의 테두리 안에 떼어 두면서 담담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043-222-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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