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의미의 도시가 생겨나기 이전 우리의 정주체계는 마을이라는 공동체개념을 갖는 취락의 형태에서 시작됐다. 이곳에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면서 서로간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갖고 서로 비슷한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형성해 왔다. 또한 물리적인 요소인 공간구성에 있어서도 위계와 질서를 갖면서 특징적인 건축형태를 형성해 왔다.

이는 어의적 개념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취(聚)와 락(落)이 모두 ‘모인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군집해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특정장소로서의 생활무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지리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시간경과와 더불어 지표에 누적되는 것으로 토지의 성격, 생활습관, 역사적 배경, 주민의 가치관과 의식구조가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영역적으로 독립돼 현재 도시적 분위기에서 나타나는 격리성과는 다른 지역고유의 내재성을 지칭한다.

하지만 현대의 취락의 현상은 어떠한가? 사회의 다변화와 축조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도시화가 가속화 되고 구성요소 또한 빠른 순환으로 전통의 취락의 의미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졌다.

우선 거주의 집단적 단위가 영역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밀화되고 너무 이질적인 집단과 구성원이 뒤엉켜있어 서로간의 의사전달체계가 혼란스러우며, 생활습관도 경제적 측면에 예속돼 극히 서로 다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또한 공간의 형태도 서로간의 대화를 위한 열린 공간보다는 핵가족화로 인한 내부지향적 모습을 갖고 있어 서로 간에 폐쇄적인 모습을 경쟁적으로 표출하거나 아니면 획일적인 주거형태 속에서 한정된 변화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어, 역사의 취락에서 나는 정리되고 화음을 내는 소리가 아닌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아우성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편리성에 초점을 둔 현대적 개념의 취락은 이제는 서서히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일부 탈도시화와 탈구조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주환경이 새롭게 구성돼 독특한 모습과 공간들이 우리주위를 형성해 나가고 있으나, 이는 새로운 도시개발에 의한 단지나 커뮤니티 조성에 의한 것으로 기존의 취락환경과는 거리가 멀게 진행되고 있다.

그것보다는 도시계획구역 내에 있는 근교 자연취락이나 전통취락에 대해 새로운 인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지역은 도시환경 내에 있으면서 도시화가 되지 않은 역사와 관습 그리고 독특한 체취가 있는 곳으로 점진적인 리모델링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개념의 취락의 조성을 위해서는 각 지자체에서 도시이미지에 부합하는 취락지구개발 및 관리계획을 수립해 각기 취락마다 그 곳 전통에 맞는 환경이 되도록 기본방향을 설정함은 물론 이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사업추진과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개념의 변화는 지금까지 진행된 역사와 단절된 개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전통적 분위기를 만들어 미래의 새로운 형태를 담을 수 있는 창조적 정주환경 추구를 의미하며, 이것이 우리만의 것으로 공간적 세계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황재훈 /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 (jhwang@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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