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세월의 공간대 위에서 삶을 살아가는 세상살이가 어느 순간의 좌절도 아니고 어느 순간의 고통도 아니다. 다만 지금 현재에 좌절과 고통의 연속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간대 위로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의 기쁨도 아니고 어느 순간의 행복도 아니다.

다만, 지금 현재에도 기쁨과 행복의 연속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시간대 위로 세상살이가 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고통과 기쁨은 서로가 반대편의 모습으로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공간으로 자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기쁨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은 자연히 아름다워지고 고통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은 자연히 괴로움의 연속선상에 서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만 계속된다면 반드시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쁨과 고통을 적절히 중화시키는 마음 자세가 올바른 마음 상태라 하고 자신감과 겸손을 적절히 하여서 행동할 때는 올바른 모습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중화의 도덕적 행위는 어느 성질의 것도 택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흑과 백의 논리가 적고 정당과 부정의 논리가 적으며 是非(시비)의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즉 기회가 알맞으면 푸른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또 다른 기회를 만나면 노란색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기회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거나 아첨배의 논리 속에 빠지기가 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화의 도에서는 무엇보다도 기회주의적 태도나 아첨배의 자세가 아닐까하고 스스로를 살피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에 자신을 돌아다본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다 보아야하며 밝음으로 돌아다본다는 것은 자신의 덕(德)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덕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크고 넓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크고 넓다 라고 하는 것은 편안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있어야 하고 편안하고 부드러운 가운데에는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며 성장의 즐거움 속에서는 겸손과 자신감이 함께 있어야 하고 겸손과 자신감이 함께 하는 가운데에서 그 중심의 축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화(中和)의 도덕적 행위가 나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중화의 도(道)라고 말할 수가 없고 대중적 이해와 배려 속에서 만들어지는 중화의 도라야 자신에게도 해롭지 아니하며 타인 속에서도 편안하고 부드러운 중심의 도(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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