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근간,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발언이 심심치 않게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소설가인 복거일씨가 1998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서 “영어공용화”를 주장함으로서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논쟁이 급부상했다. 과연 영어만 잘한다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영어에 있어서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바닥권을 헤매는 일본도 일찍이 메이지 시대의 모리 아리노리란 인물이 “아예 국어(일본어)를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영어 국어화론’을 주장했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서구추종 일변도의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모리의 이러한 엉뚱한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비록 일본의 이야기지만, 이 대목은 한 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의 한국에도 논란이 일고 있는 관심사항이다. 유례없는 영어 열풍이 불고 심지어는 어린학생  혀 수술까지도 행해지는 한국 상황에서 ‘영어 공용론’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메이지 시대의 ‘영어국어화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현재의 일본은 오히려 한국에서의 ‘영어공용화’ 논쟁을 되받아 다시 이 문제로 후끈거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같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논쟁거리로 회자될 뿐, 언제나 말만 풍성하지, 실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앵글로 색슨계의 나라인 미국에서 존 나이스비트(‘메가트렌드’ 저자)는 언어통합 세계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미인 등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계화’라는 사탕발림과 같이 영원히 앵글로 색슨족이 세계 제패를 하겠다는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주장에 왜 우리 한국인들이 부화뇌동해야만 하는가? 그럼 50년 후 중국이 경제대국이 되면 그 때는 ‘중국어 공용화’하자고 또 난리칠 것인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화되는 것이지 우리가 남 따라 가는 것만이 세계화가 아니다. 우리의 사대주의적 발상을 이제는 ‘중심주의’사고로 바꿔야 할 때이다.

영어만 잘하면 선진국 되나? 분명 아닐 것이다. 동남아의 필리핀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직도 60년대 수준 그대로라는 그 사람들, 영어는 시장 상인은 물론 노점상도 잘하던데 왜? 아직도 개발도상국일까? 그럼 일본은 아시아에서도 꼴찌를 면치 못하는 영어 실력 가지고 어떻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가?

영어는 우리가 국제화 시대에 수출도 하면서 교류도 하고 외교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자, 수단이지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언어가 돼 우리의 영혼이 되고 삶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예 우리말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삼자거나 공용화 하자는 어리석은 주장은 이제 제발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 전 국민이 영어 안하더라도 영어 할 사람은 열심히 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만 해도 충분하니 너무 앞서나갈 필요 없다고 본다.

우리는 남 나라 글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이웃 국가도 시기하는 훌륭한 한글을 이제 홀대만 하지 말고, 더욱 아끼고 보듬고 지켜나가야 할 때이다. 우리말은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발전시켜야 더욱더 소중해지는 것이며, 경제발전과 함께 강대국이 될 때 이웃국가의 시샘은 동경으로 바뀌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우리말을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태권도처럼 우리말도 세계화 될 것이며,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장팔현 /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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