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참으로 고요한 가운데에서 그 기쁨을 누리고 참으로 편안한 가운데에서 그 기쁨을 누리며 참으로 충만한 가운데에서 그 기쁨을 누린다. 그리고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마음에서 요동을 치는 것은 같다.

그래서 마음이 잠시 편안한 듯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서 불안해지고 불안한 듯 하다가도 또 다시 편안함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는 내부의 기운과 외부의 변화를 따르기 마련이고 특히 외부에서 구하고자 하는 바람을 마음이 더욱 따르는 것이다.

오늘 하루 몸 건강하였고 세끼의 밥을 잘 먹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하고 아주 검소한 생각으로 만족을 얻으면 편안함이 친구가 되겠지만 더 많은 외물(外物)을 구하려고 쫓는 그 순간부터 불안함은 시작이 된다.

한편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물(物)은 반드시 죽는다는 조건과 생명을 지니고 있는 만물은 모두가 다르다는 전제조건을 마음에서 먼저 익혀야 한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아야 하고 더불어 모든 생명이 각기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을 때에 세심(洗心)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만물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명제를 두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아주 소소한 하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삶의 형태에서 반드시 차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누군가와 경쟁을 일으키는 마음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가 출세를 하여 부귀를 얻는 것도 나와는 다른 삶이기에 그러한 것이고 가까운 친지가 열심히 일을 하여 전답을 마련하는 것도 나와는 다른 삶이기에 그러한 것이며 사랑하는 후배가 나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지는 것도 나와는 다른 삶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서 얼마나 만족을 하고 얼마나 여유 있는 생활을 할까? 라는 명제에서 자신의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누구도 부러워 할 이유가 없고 누구와도 경쟁을 하여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생각을 가질 때에 나의 마음은 더욱 편안하여 지고 편안한 마음에서 세심(洗心)이 더욱 맑아지며 맑아진 마음을 보고 찾아오는 운성(運性)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에서 참다운 기운을 오랫동안 보존을 하고 참다운 마음을 맑게 유지를 하며 참다운 영혼을 순수하게 유지 할 수가 있을 때에 이 보다 더 값진 삶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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