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십여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에 봄을 맞이하여 대대적으로 외벽 색칠공사가 진행 중이다.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볼썽사납던 외관이 말끔해 지고 있다. 새 단장되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동기부여된 나 또한 어수선한 집안정리를 한다.

몇 년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물건과 옷가지들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진즉부터 했었지만 막상 실행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이유와 핑계는 많다.

시간이 없거나, 엄두가 나질 않아서, 언젠가 쓸 용도가 있으니 등 여러 정황으로 차일피일 했다. 그러는 사이 집안은 물건들이 한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 점점 식구들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내 오랜 고질병 중에 하나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처음엔 마음을 주고 정이 들기가 힘들지 한번 연줄이 이어지면 쉽게 마음과 손에서 떠내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야 당연히 오래 말하는 지속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 맞지만, 물건으로 가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주인의 성정과 손길이 닿아 정취가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을 물건들이 여기저기 장식장속이나 베란다와 각방마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본래 주인인양 있으니 그것이 최대 골칫거리인 것이다.

가축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생활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물품들로도 일가를 이루고 척박한 초원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도시에 정착해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에 비해 수많은 물건의 홍수 속에서도 삶의 허기를 느끼며 늘 새 물건들을 사 나르기에 바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미덕이라고 미디어는 늘 현란한 광고와 상품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이제 각자 공부와 일로 분가를 준비하는 자식의 물건들도 최소한으로만 남기고 나눌 것은 나누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면서 며칠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물건들이 추억이라는 시간 속으로 초대하며 정리의 진척은 없이 자꾸만 샛길로 해찰을 떨게 한다.

아이들이 어린 날 썼던 편지들과 소소한 독후감과 그림, 책들은 유장한 개인사가 깃든 것이기에 다시 정리함에 넣는다. 한동안 추억이 담긴 물건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향수 속에서 행복해한다.

재활용업체에다 정리한 옷, 신발, 가방들을 들려 보낸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쪽으로 전자제품과 옷가지를 수출한다고 한다. 해외답사를 하다 보면 한국어로 쓰인 중고 옷들을 입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옷가지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자동차까지 품목들은 다양하다.

이제 우리 집을 떠난 물건들이 어느 이역만리의 사람들 몸을 따듯하게 해줄 것을 생각하니, 물 건너 온 구제 물품이라고 무조건 좋아하며 미제, 일제를 찾던 불과 몇 십 년 전의 우리네 살림살이가 떠오른다. 그들도 외제라며 남들 앞에서 으스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서글픈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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