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갑 시인 정형시집 ‘꽃들의 불륜’
詩마다 ‘꽃’소재 삼아 ‘인생’ 녹여내

▲ 시집 ‘꽃들의 불륜’

백옥처럼 하얀 맨살

살가운 기운들이

어둠을 밝히는가 밤하늘이 환하다

아릿한

향기로움이

뜰을 가득 채우고

 

보드라운 매혹에

창틀까지 파고드는

해맑은 소식인가 비밀스런 미소인가

수줍은

여린 꽃송이

세상 밖을 보고 있다

-시 ‘백목련’

각시붓꽃, 조팝나무, 철쭉꽃, 노루귀꽃, 호박꽃, 매화, 자주달개비꽃, 달맞이꽃, 며느리밥풀꽃, 연꽃, 코스모스, 봉선화, 찔레꽃…. 가지각색 시어로 만들어낸 글밭이 온통 꽃밭이다.

시집 전체를 꽃 이야기로 엮어낸 권순갑 시인의 정형시집 ‘꽃들의 불륜’.

각각의 시편들 모두가 ‘꽃’을 소재로 삼았다.

바다를 건너 와서 외국 이름으로 피어난 꽃이 아닌 우리의 산과 들녘에서 역사와 시간을 함께 숨 쉬어 온 우리 이름을 지니고 있는 꽃들이다.

저자는 시집 첫머리에 “꽃 피는 봄을 맞아 나 역시 꽃을 노래한다. 꽃처럼 곱고 예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구절구절 표백하면서 나도 한송이 꽃처럼 화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꽃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고백을 전한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우리의 정서가 담긴 삶과 주변을 아우르는 풍경을 배경으로 꽃들이 피어 있어 시 한편 한편이 더욱 정겹다.

꽃을 노래하는 저자는 문명인 바퀴의 속도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인이 되어 도보의 속도로 꽃에 다가가 바라보고 매만지고 향기를 맡는다.

꽃의 향기는 시인의 언어와 만나 구구절절 속사정을 풀어놓는다.

특히 저자의 꽃 이야기는 우리의 삶 이야기와 닮아있다.

꽃의 특성과 꽃에 담긴 이야기들이 시 속에 우아하게 녹아들어가 꽃들의 개성을 살리고 우리 삶의 모습을 비춘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가 어떤 꽃의 이야기와 닮아있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인 반영호씨는 “누가 뭐래도 권순갑 시인은 꽃과 나무와 자연을 노래한 낭만파 시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적 내면이 가슴속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그가 풍류와 고결함의 옛 선비 기품을 꼭 닮았다”고 말했다.

시인 이정희씨는 “꽃을 보고 삶을 노래한다. 그 노래는 꿈의 반경을 돌아 아스라한 여운을 남긴다. 편편이 배어 있는 삶의 진실에서 우리는 웃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내밀한 향기를 맡는다. 아름다운 시어 자체가 그윽한 내음이었고 거기 꽃의 전부가 농축된 것처럼 정제된 싯귀마다 삶과 철학과 가치관이 묻어나면서 유려한 감동에 젖는다”고 평했다.

도서출판 찬샘. 112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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